이제 심리학 책은 그만 봐도 되겠다

오늘의 밥값 13 / 서점에서 길을 잃다

by 수달씨

이제 심리학 책*은 그만 봐도 되겠다 싶었다. 이제는 제목만 봐도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려질 정도로 많이도 봤다. 아니, 서점에 깔린 에세이 코너의 제목들만 연결해도 한 편의 심리에세이가 완성될 지경이다. 당신은 쉬어야 하고, 뻔뻔해져야 하고, 미움받아야 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해도 괜찮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00은(서른은, 마흔은, 엄마는, 육아는, 이번 생은) 처음이니까 틀려도 괜찮고 너무 열심히 할 필요 없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하기로 했다'는 책들, 수많은 '나'들이 제시하는 대안의 홍수 속에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사실은 최근 몇 달간 그렇게 살아본다고 살아봤는데 살던 가락이 있어서 쉽지가 않다. 그 조차도 매번 자신과의 싸움이다. 남들이 살라고 하는 방식을 피하려고 책을 팠는데 이제는 다르게 살라고 하는 잔소리에 머리가 다 아파질 때쯤. 이제는 그만 봐도 되겠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갖 제목들이 하는 꾸중 아닌 꾸중에 현기증이 나 서점에서 길을 잃기 직전 즈음 여행 책을 빼들었다. 지구 반대편 어디쯤을 걸어본 이들의 이야기들. 어쩌면 평생 가보지 못할 나라들을 그림으로 기록한 책들. 이제 '내 안'이 아닌 바깥이 궁금하다. 다른 세상에서 다들 어떻게들 살고 있니.

밖으로 나가기 어려워져 더욱 '내 집'과 '내 안', '내 관계'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그래, 우리들에겐 이런 시간이 필요해,라고 하기엔 꽤나 긴 시간을 보냈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이제는 보고 싶다. 쉴 만큼 쉬었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학 책은 전문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서적이 아닌 심리와 감정, 정서 및 자존감 문제들을 다룬 인문사회분야 서적 및 에세이 등을 말한다.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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