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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an 27. 2022

봄, 설렘

오늘의 밥값 18


주방 창가에 앉아 빨래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다. 볕이 좋아 오후에는 산책을 나가려고 했는데. 그냥 책 속을 걸었다고 생각하자.

낡아서 벌어진 철제 새시 틈으로 햇빛이 채 식히지 못한 찬기운이 들어온다. 고동색 창틀에 홑겹 유리를 끼워넣은, 앙상한 창으로 둘러진 ㄱ자 시골집. 겨울이면 온 창을 비닐로 틀어막고 이불속에서 버텨내야 하지만 1월이 며칠 남지 않은 오늘은 창가에 붙어 앉아 볕을 즐겨본다. 조금 있으면 낮동안 질퍽해질 흙을 비집고 냉이며 민들레 같은 것들이 올라오겠지. 언 땅에서 숨죽여 기다리는 봄의 정령들.

시린 손 호호 불어가며 작업하던 컴퓨터 방에도 봄이 오겠지. 길고양이 어슬렁거리는 골목에도, 고드름 얼던 처마 밑과 담벼락에도. 알고도 당하는 교통사고처럼 또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이렇게 매번 설레서 어쩌나.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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