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밥값 20 / 잘하는 걸 잘한다고 말하는 게 어때서
오늘은 슬픈 날이다. 오랜만에 나로 인한 슬픔이 아닌. 아이가 온라인 수업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적는 란에 이런 말들을 적었다. '혼자 잘 수 있다' '약을 잘 먹는다' '혼자 잘 논다' '집에 혼자 잘 있는다'
처음에는 아이를 혼자 두는 부모로 낙인찍히는 것 같아서 흠칫했고(실제로는 나 없이 혼자선 문밖으로도 잘 안 나가는 아이다) 그다음엔 뭐든 스스로, 씩씩하게, 혼자 할 때만 칭찬을 들어온 아이에게 미안해서 슬퍼졌다. 그리고 가장 슬픈 건 아이가 잘하는 것을 잘한다고 말해주지 못한 것.
이따금 아이에게 "넌 뭘 잘하는 것 같아?"라고 물으면 아이는 대체로 모른다고 대답하곤 했다. 또 가끔 자기는 누구보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한다며 불평을 하기는 했다. (아이는 그림이나 노래, 운동 같은 그 나이대에 눈에 쉽게 보이는 분야에 재능이 없어보인다, 아직까지는) 그럴때 나는 "네가 뭘 잘하든, 못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해주곤 했다. 오은영 박사가 하듯이, 글로 배운 대로. 나는 어떤 것들을 잘하는 바람에, 어릴 때 기대와 칭찬을 많이 받고 자라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하기 어렵고, 그것들을 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상상할 수 없고 지금처럼 무너져있는 나를 좋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내 아이는 무엇을 잘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그저 자신을 좋아하며 재밌게만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요 며칠 아이는 코로나에 걸려 집에서 격리 중이었다. 아픈 아이는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어 억지로 혼자 재웠고(아홉 살이지만 아직 완전한 수면 분리 전이었다) 약을 먹을 때마다 참 씩씩하게 잘 먹는다고 칭찬했고, 가끔 뭘 사러 나가야 할 때 혼자 두고 나가면서 다녀오면 혼자 잘 있어줘서 고맙다고 칭찬했다(주택이라 보안이 취약해 자주 혼자 두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참 우리가 편리한 쪽으로 칭찬을 해왔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이게 가스 라이팅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른 기준에 '올바르게', 또는 '편리하게' 행동했을 때 칭찬을 '활용'해왔으니까.
아이가 무엇을 잘했을 때보다 열심히 했을 때 칭찬하라는 교과서적인 조언대로 해온 결과 아이는 자기가 뭘 잘하는지 도무지 모르게 된 걸까. 남에게 자식 자랑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한글을 남보다 일찍 뗐을 때도, 국기 모양과 나라 이름과 수도를 줄줄 외웠을 때도, 더하기 빼기를 스스로 깨우쳤을 때도 잘했다, 잘한다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그게 너무너무 미안하다.
내가 겪은 트라우마를 아이가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들이 대체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아이는 역시 부모 인생의 한 꼭지가 아니라 개별 개체라는 생각을 잊으면 안 되는 걸까. "나처럼 되어야 돼"든, "나처럼 되면 안 돼"라는 마음이든 부모가 자신이 가진 도덕기준이나 경험치를 아이에게 반영하려 하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걸까. 하지만 부모는 육아 기계가 아니고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작용이다. 다 잘할 수가 없다. 100점짜리 결과는 불가능하다. 그냥 그런 것.
다만 나는 오늘 아이에게 이런 말들을 해주려고 한다. 너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한글을 참 잘 읽었고, 국기를 달달 외울 수 있었고(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삼행시도 아주 잘 짓고, 성대모사도 기똥차게 잘해서 멋있다고. 좋아하거나 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긴 시간을 들여 끝까지 매달리는 집중력을 가진 노력 대마왕이라고. 공룡도, 곤충도, 게임도, 포켓몬도 아주 박사가 될 때까지 공부하는 끈기 쟁이라고. 매일매일 잘하는 것을 말해줄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말이다. 긴 인생 살면서 그 정도 우쭐함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 차곡차곡 쌓이면 언젠가, 아이가 커서 지금의 나처럼 무언가 바닥났다고 느낄 때 깊은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자랑스러운 말들을 지금부터 묻어주어야겠다. 아이 이름으로 삼전 주식이나 거액의 적금 부동산을 묻어두는 부모는 못되지만 말이다.
202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