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오늘의 밥값 22 / 상담의 마법

by 수달씨


최근 뉴스를 보면 수시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사실 나는 화가 많다). 그래서 어제저녁에는 꽃 사진 정도밖에 없는 내 한가한 sns에 이 치미는 분노를 담아 몇 자 적어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1분도 안되어 지워버렸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나의 이름이나 나의 일상과 나의 가족 등등이 온라인상이든 어디든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이 매우 두렵다. 그래서 글을 쓰고 어딘가에 올리는 행위조차 무척 조심스럽다. 나는 온라인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키보드로 타이핑된 글자들이 언제고 무기가 되어 나와 내 일상을 해칠 수 있다고 느낀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직접 간접 경험들이 겹쳐 있지만 소싯적 왕성하게 활동했던 운동권이었기에 지금의 이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어쨌든 정치와 관련된 과거 경험들은 여기서는 차치하고 이 글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공포의 근원은 미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강박.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 누구도 나를 싫어해선 안된다는 건 모두가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건데. 그게 불가능한 일이란 건 너도 잘 알잖아?

내가 무얼 추구하든 쫓든 이상화하든 욕망하든 그것들은 대체로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것이 내 평생의 기준점이었던 걸까.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또는 너무 많이 사랑해서일 수도 있다. 난 그냥 끝없이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오늘 아이에게 저금통에 돈을 모아 '좋은 일'에 쓰자고 했다. 그런데 좋은 일이란 게 있나? 나쁜 일은 확실히 있지만. 내가 말한 좋은 일이라는 건 누군가를 돕는 일,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동물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그건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지,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지 않나. 세상에 좋은 일, 좋은 직업, 좋은 성격, 좋은 생각, 좋은 사람이 따로 있다는 나의 지배적인 생각은 이렇게 지배력이 강하다.


이타심은 타인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고 그건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누구나 갖고 있는, 수많은 마음 중 한 종류일 뿐이다. 사람은 단편적이지 않다. '좋은'이라는 추상적인 틀에 나를 가두고 채찍질한 세월이 야속하다.


오늘 지역의 정신건강센터에서 한 회 차 무료상담을 받고 나는 뭔가 개운함을 느꼈다. 큰삼촌 정도 되는 느낌의 전문의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나를 머리 꼭대기에서 스스로 지켜보는 일도 신기한 기분. 나는 나를 때때로 우울한 나, 불안하고 초조한 나, 게으른 나, 나를 채찍질하는 나, 돈벌이 지옥과 소비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나, 감정의 온탕과 냉탕을 오락가락하는 나로 잘도 규정하고 틀에 가둔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은 내가 쏟아내는 말, 스스로를 규정하는 수많은 말들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 그에게 필요한 고갱이만을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에너지가 많네요. 나한테까지 좋은 기운이 전달되네."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지. 꿈을 쫓더라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밸런스가 중요해요." "그래도 오륙 년 힘들게 일했으면 한 일이 년 푹 쉬어도 되지."


사실 지금은 기운이 좋은(?) 시기이기 때문에 상담이 꼭 필요한가 싶었지만 받고 나니 역시 좀 편안해졌다. 내가 겉치레로 포장하는 수많은 나, 남이 어떻게 볼까 신경 쓰는 나 말고 그냥 나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오늘의 상담 주제나 대화 내용은 전혀 그런 쪽이 아니었는데 어떤 마법인지 모르겠다. 아마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편견 없이 내 상황을 들어주고 필요한 이야기를 해준다는 경험 때문일 듯하다. 나라는 틀, 내 자잘한 욕망들과 질척거리는 상황들에 갇혀서 보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지 못한 것들이겠지.


상담의 마법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어떤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알지 못할 때가 많고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여러 개의 거울을 갖고 있다면 나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고민에 빠져있는 누구에게라도 상담을 추천한다. 분명 작은 마법이라도 발휘될 거라고 믿는다.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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