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고 있을까

오늘의 밥값 19 / 쉬어, 말어? 일해, 말어?

by 수달씨


지금보다 더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 매일 책을 읽고 좋다는 드라마나 영화를 모조리 보고 싶다. 글을 더 공식적이고 전문적으로 쓰고 싶다. 출판학교에 다니고 아이패드를 사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재봉틀을 꺼내어 인형을 잔뜩 만들고 싶다. 빨리 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마음은 풍선처럼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며 그득그득 부푼다.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 무쓸모로 도태될 것 같다. 내가 사라질 것 같다. 유의미한 일을 해야만 내 존재가 유의미해지는가.


지금 루틴처럼 만들어놓은 것은 실내 자전거 40분, 어플로 하는 영어공부 10분. 산책이나 책 읽기는 매일은 아니어도 종종. 그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데 몸도 마음도 안받쳐주고 시간이 그냥 멍청히 흘러간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서도 이상하게 시간이 없다. 아침이랑 전날 먹은 것들을 설거지하고 집안일을 하거나 커피 한 잔 하며 멍 때리면 금세 점심이 된다. 내 배에 넣을 것들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산책(세로토닌 흡수를 위해 해를 꼭 보려고 노력한다) 조금 하고 졸린 눈으로 오후를 보내면 이제 아이가 돌아온다. 나는 또 간식을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또 저녁을 준비해 먹이고 치운다. 설거지는 또다시 산만큼 쌓이고, 아침에 치운 것이 무색하게 거실은 점점 어질러진다.

집안일이라는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처럼 매일 손발을 굴려 이 집을 돌아가게 만드는데 온 하루를 쓰면서도 나는 언제나 내 게으름을 탓한다.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함에 초조하다.


언젠가, 옛 친구가 내게 그랬었지. 당신은 내가 본 사람들 중 누구보다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그때의 나는 막 전업 육아에서 탈출하여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나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는 일분일초가 아까워서 백을 내어 일했다. 직장에서도 일과 일 사이에 만화를 그리고 책방 투어 같은 이벤트를 벌였다.

직장을 나와 개인사업을 시작하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그런 때에도 나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친구가 그런 말을 한 거겠지. 더 할 수 있음에도 더 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못살게 군다.


우울증인지 번아웃인지 하여튼 일을 못하게 된 뒤로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다. 조금만 무리하면 허리와 다리가 아파 뭘 할 수가 없었다. 마당 농사도 꽃심기도 무릎이 아프니 고생스러웠다. 걷다 딴생각을 많이 하는지 발목을 무시로 접질렸는데, 지난겨울에는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같은 자리를 크게 접질려서 복숭아뼈가 야구공만 해져 거의 두 달을 환자처럼 지냈다. 내 몸이 자꾸만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그만하고 이제 제발 쉬라고.


몸이 어쩌지 못해 쉰 지 몇 달, 마음이 힘들어 쉰 지 몇 달, 그사이 일이 끊어져 강제로 쉬고 있는 지금 나는 대체 어디까지 쉬어야 하는가 매 순간 초조와 불안. 돈은 벌어야 하고 돈을 써야 할 곳도 쓰고 싶은 곳도 많은데.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나 계속 쉬어, 말어? 일 해, 말어? 그래, 인생에 정답이 없는 건 알겠는데 그러면 대체 어디에서 답을 구한단 말이야?


이제 춘분이라는데. 3월도 중반을 넘어가는데 아직도 바람은 차고 시골집의 바닥은 냉기로 가득하다. 기름값이 너무도 올라 오직 전기장판과 전기히터에 의지해 이 계절을 버틴다.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서는 머릿속 전쟁만 매일. 일하지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늘도 하루가 간다. 봄은 과연 올까. 살다 보면 여기에도.


2022/03/20



* 자우림 <샤이닝>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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