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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n 17. 2022

넉살에게 명반은 있는데 히트곡은 없는 이유

오늘의 밥값 26 / 2년 만에 만난 넉살의 새 앨범에 부쳐


넉살의 앨범과 음악에는 서사가 있다. 잘 만들어진 책은 그 책의 목차만 봐도 전체 분위기를 읽을 수 있듯, 넉살 앨범은 트랙리스트만 나열해도 한 편의 시 혹은 드라마가 그려지곤 한다. 그것은 그의 음악적 커리어에 있어서 큰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의 서사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이고, 날카로우면서 결과적으로 따듯하고자 한다. 그런 진심이 예술성과 만나 그가 내는 앨범은 느리게 구워지는 장인의 도자기처럼 명반으로 태어난다. 그가 갓 구워낸 앨범의 첫 트랙을 처음으로 플레이하면 어쩐지 아프고 슬픈 소리가 난다.

이런 점은 앞서 말했듯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오락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시대.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아프고 슬픈 것을 찾기보다 가볍고 밝은 것을 소비하길 원한다. 이럴 때 아픈 데를 찌르고 다시 어루만지는 넉살의 방식은 대중적으로 환영받기 어렵다. 그에게 명반은 있지만 히트곡은 없는 이유일지 모른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매일을 울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평범한 아픔이 그렇게 나를 쥐어 팼다. 어떤 회차는 너무 힘들어서 건너뛰기도 했다. 몇 년 전 <나의 아저씨> 때처럼. 너무 힘든 현실은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아서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결국 나를 포함해 누군가는 이런 드라마를 보고, 같이 울고, 두고두고 기억한다. 슬픔과 희망은 삶이라는 동전에 달라붙어있는 양쪽 면이라서 하나만 취할 수 없다. 그런 지긋지긋한 우리 삶을 아름답다고, 위대하다고, 그러니까 살아내라고 말해주는 아름다운 서사들을 우리는 여전히 향유하고 사랑한다. 그런 서사가 여기 넉살 앨범들*에 있다. 그래서 넉살 앨범은 꼭 순서대로 듣고, 끝까지 들어야 마지막에 닿는 그 위로의 춤에 함께 할 수 있다. 넉살의 노래를 하나 두 개만 추천할 수 없는 이유가, 한 곡만 줄기차게 들어서 음원 순위에 올려놓을 수 없는 이유가, 넉살의 대표곡을 뽑기는 애매하지만 모든 앨범이 명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라서.

다행스러운 건, 이번에 발매된 넉살과 밴드 까데호의 합작 앨범**은 그 특유의 서사와 까데호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연주가 만나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이전의 넉살의 랩은  야생의 늑대로 비유되곤 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여섯 번째 트랙의 제목 <숲>처럼, 도시를 방황하던 야생의 늑대가 자신을 품어주는 곳을 만나 더 넓어지고 깊어진 느낌이다. (앨범에 대한 느낌은 여기까지만 말하기로 한다. 각자가 느낄 몫이다.)

앨범만 나왔다 하면 음원 사이트에 '차트 줄 세우기'를 하는 몇몇 가수들처럼 대중적으로 소비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잘 팔리는 앨범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나처럼 넉살의 서사에서 위로를 받는 팬들에게는 단비 같은 앨범. 그리고 넉살의 음악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더라도, 까데호의 귀한 명품 연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앨범이니 기왕이면 조금만 더 팔렸으면 좋겠다. 다음 앨범을 또 낼 수 있는 정도로만 팔리면 되지 뭐. 안 그래요?



*1집 <작은 것들의 신> 2016.02.04  

  2집 <1Q87> 2020.09.13  

**넉살x까데호 합작 앨범 <당신께> 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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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 글의 카테고리명인 <오늘의 밥값>*도 넉살 1집의 일곱번째 트랙명 <밥값>에서 따왔을 정도로 넉살 팬인 필자가 2년만에 나온 앨범에 흥분해 팬심을 담아 쓴 헌정글입니다.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있는 독자라면 이해해 주시겠지요?

*2020.04.27 필자의 글 <어제의, 그리고 내일의 밥값은 생각하지 않기로 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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