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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ug 29. 2022

디지털 세상에서 스타가 되고 싶어?*

오늘의 밥값 35 / 아직도 TV 채널을 돌리는 게 좋은 원시인의 항변


미국식 성장 혹은 성공 스토리를 보면 대체로 이렇다. (미니멀리즘이나 삶의 작은 행복을 깨닫는 류의 성장 스토리 다루는 에세이, 영화, 다큐 등을 자주 접하는 보는 내 관점에서) 주인공은 엄격한 부모 밑에서 젊은 날 열심히 공부와 경제활동에 매진해 커다란 회사를 일구거나, 커다란 회사의 연봉 얼마 얼마를 받는 중역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 곁에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고 자기 삶에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모든 부와 명예를 뒤로하고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모든 물건을 버리거나, 모든 소비를 중단하는 등 기행을 벌인다. 대체로 그것들은 99일 프로젝트라던지 365가지 물건 버리기 프로젝트라던지 00개 도시 돌아다니기 라던지 하는 숫자의 기록으로 명명된다. 그들은 그 과정을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나 유튜브에 기록하고, 그 영상이나 포스트들은 미국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다. 몇만 몇십만 팔로워를 거느리게 된 그들은 마침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배운 것들을 강연을 통해 전파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제 그들은 이전의 부유나 돈이나 직업과는 멀어졌지만 대신 새로 얻은 현재의 삶과 현재의 관계들에 행복해한다.

반대의 스토리도 있다. 어린 날 폭력과 알코올 중독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부모 밑에서 자라, 자신도 술과 섹스와 마약으로 자신의 젊은 날을 망치다가 문득 돌아보니 곁에는 아무도 없고 몸은 망가지고 미래는 어두컴컴했다는 이야기. 그러다 어떤 사람이 손을 내밀거나 혹은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는 등 어떤 계기로 어떤 특별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그 과정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기록을 하게 되고...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위에 적힌 내용과 같다.


출발은 다른데 결말은 비슷한 이 스토리들은 마침내 책이나 영화로 만들어지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 세계로 수십수백 만부가 팔려나간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독자 혹은 관객인 나는 책으로, 넷플릭스 콘텐츠로, 영화로 이것을 접한다. 그리고 꿈꾼다. 나도 뭔가 해볼까? 나도 어딘가에 기록해볼까? 나도 꾸준히 실천하고 기록하면 몇만 팔로워를 가진 셀럽이 되어 풍족하진 않아도 명예로운 삶을 살게 될까. 말하자면 인세 및 저작권료, 유튜브 광고수익이나, 강연 및 콘텐츠 수익으로 적당히 벌고 적당히 유유자적한 삶 말이다.

내가 이쯤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바로 '몇만 팔로워를 거느리면 행복해지는가'의 문제다. 왜 이 행복들은 공통적으로 인터넷 세상에서 '스타'가 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가 말이다. 무언가 해보려고 고무되더라도 나는 항상 이 지점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기술을 배워, 기술을 배워야 먹고살지'라고 말했다.** 나의 이십 대 시절에 그것은 '자격증'이었다. 놀더라도 자격증 공부 한두 개는 다들 하고 있었다.(나만 빼고) 지금의 그것은 어쩐지 유튜브로 통하는 것 같다. 자신이 작은 재능이나 취미, 콘텐츠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그것을 유튜브로 승화 혹은 물화, 상품화시키지 않으면 왠지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유튜버 혹은 인플루언서가 한 달에 얼마의 수익을 벌어들이는지 하는 이야기들이 또다시 유튜브 영상을 통해 돌아다니곤 한다. 이제는 부동산도 유튜브로 집을 판다.

나의 아이도 드디어 "나의 꿈은 게임 유튜버,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는 거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제발 그 말만은 듣고 싶지 않았는데... 진보주의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기계문명과 디지털의 발전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지독히도 보수적이다. 그건 내 정치철학이라기보다는 생존적인, 내 DNA의 반응이다. 나는 기계가 너무 무섭고, 낯설고, 잘 고장내고, 도무지 익숙해지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디지털 문명의 발전 속도에 맞춰 인류의 도덕과 철학이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이리하여 하여튼 '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을 해야 하는가'하는 난제와 더불어 이제는 '디지털 세상에서 성공해야 하는가', '성공을 위해서는 디지털 세상의 노력이 포함되어야 하는가'라는 숙제까지 함께 풀어야 하니 나로서는 조금 더 복잡해졌다.


내 주변엔 이제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영화나 드라마는 넷플릭스로 보고 예능적 재미나 일상에 필요한 정보는 유튜브로 얻는다. "나 어제 TV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봤는데 너무 재밌었어!"라고 말하면 "그게 뭔데?"라는 반응 속에 어쩐지 원시인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진다. (심지어 나는 여행을 가기 전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해당 지역에 관련된 여행책을 모은다. 남편은 혀를 끌끌 차지만...) 모두에게 열린 유튜브 콘텐츠 시대가 TV라는 독재적이고 일방적인 송출 방식보다 더 민주적이고 건강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성우가 더빙한 미국 드라마 <엑스 파일>을 월요일 밤 10시가 되면 시간 맞춰 보고, H.O.T가 나오는 음악 방송을 비디오 테잎에 녹화해서 보던 나로서는 아직까지 채널을 돌리다 만나는 다양하지만 다소 한정된, 그리고 약간은 검증된 프로그램들을 더 안전하고 즐겁고 반갑다고 느낀다. 넷플릭스에서 어떤 영화를 볼지 하염없이 고르는 것도 좋지만 채널을 돌리다 ocn 같은 영화채널에서 <타짜>, <아저씨>, <쇼생크 탈출>이 하고 있으면 중간부터라도 어쩐지 보고 또 보게 된다. 원하는 데서 끊거나 돌려볼 수 없는 데다, 그 수많은 중간광고를 감수하고서도 말이다.(이제는 한국어 영화인데도 넷플릭스 자막이 없이는 보기 어렵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그만큼 우리는 넷플릭스식 영화보기에 익숙해가고 있다.) 수십 가지 화려한 빵을 파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도 좋지만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한두 가지 빵을 골라 담을 때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이 이야기의 끝은, 결국 나는 그런 방식의 성공스토리를 쓰는 사람은 못될 거 같다는 자조적인 메시지를 담는 것으로 마치게 될 것 같다. 브런치에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묶어서 책으로 낼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에 계속 올려볼까? 출판 관계자가 내 글이 좋다고 연락이 오려나?' 등등 그런 종류의 야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조차도 이젠 내려놓았다. 그냥 '성공'도, 디지털 세상에서의 '성공'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몇 달간 고민하며 아이패드를 샀지만, 왠지 종이에 펜으로 끄적이는 게 더 편한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냥 그런 나를 기록 혹은 대변해보고 싶은, 길고 긴 오늘의 밥값.



*제목 속 '스타가 되고 싶어?'는 지금은 사라진 예전 TV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속 오래된 대사이다. 제목 조차 필자의 나이와 글의 방향을 암시한다.

**넉살 1집 앨범 <작은 것들의 신>에 수록된 두 번째 트랙 <Skill Skill Skill>의 가사를 참조해볼 것.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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