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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Oct 03. 2022

서점을 할 것이냐?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을까 1

마음에 드는 서점 자리가 나왔다. 마침내. 지금 사는 이 동네에서 몇 년을 더 살지, 언제 이사를 가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서점이나 내 공간을 여는 것은 다음 정착지일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여기 이 동네에 내가 상상하던 공간이 임대로 나온 것이다. 초등학교 앞,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이웃들이 산책하고 길에 서서 수다를 떠는 바로 그 위치다. 1층이지만 도로에서 비껴 있고 주차공간도 넉넉한 데다 차 타고 지나가면서 충분히 보이는 곳. 너무 크지 않은 열 평 정도로 혼자서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는 곳. 카페나 공방을 했던 곳이라 대체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 손이 많이 안 가는 바로 그곳.

게다가 주변은 나름 학원가이고 옆집은 분식집이라 오며 가며 들를 수 있는 적당한 유동인구를 품고 있다. 지역 특성상 좋은 자리의 매물이 자주 나오지 않고 비싸게 거래되는 걸 감안했을 때, 싼 자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바가지는 아닌 정도의 임대료다.

권리금은 없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오백만 원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아니, 그냥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너무 갑작스럽다는 것. 머릿속으로는 당장 서점을 열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미 오래전에 구체적인 구상이 끝나 있다.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다. 인테리어, 운영방식, 프로그램, 책의 큐레이션, 심지어 어떤 종이에 책을 포장할지 까지 서점 운영에 대한 이미지화는 너무나 구체적인지 오래됐다. 하지만 지금 이 동네에서 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몇 년 뒤의 일로만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 여기에서 서점을?

지금도 빚이 많은데 더 빚을 낼 수 있을까? 수익은커녕 월세라도 매달 낼 수 있을까? 창업과 공간 운영은 만만한 일이 아닌데 내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을까? 혼자서 다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또다시 (상상한 대로 될 것만 같은) 망상이고 (내가 할 수 있다는) 착각이면 어쩌나. 또다시 좌절하면 어쩌나.

서점 자리를 본 날부터 낮에는 서점을 하는 상상으로 즐겁고 두근거리고, 밤이면 이게 과연 맞는 걸까 불안한 며칠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 곧 추석이라, 그전에 결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사이에 공간이 다른 주인을 찾으면? 내 것이 아닌 게지. 여하튼 시간을 약간 벌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이런 날들을 겪곤 했다. 괜찮은 서점 자리를 보았을 때, 갑자기 에너지가 뻗쳐 올라올 때, 서점이나 뭔가 멋진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럴 때는 지금의 삶과 일상이 너무 하잘 것 없게 느껴지고 내 행복은 다른 먼 곳에 있다는 생각, 온통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 깊은 우울감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번에는 다르게 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게 꼭 아니어도 괜찮고, 나는 지금의 생활도 만족스럽다라고 생각하자. 초조해지지 말고 물 흐르듯이 맡기자. '나는 반드시 할 수 있어!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보다는 '천천히 점검하고 준비해보자' 라는 느낌으로 여유를 갖고 이 상황을 지켜보기.

그렇게 하니 주변 사람들의 말에 화가 나는 일도 줄어들었다. 내가 서점을 하고 싶다고 하면 백이면 백 "돈은 어떻게 벌건데?" "책 팔아서 월세는 낼 수 있어? 한 달에 몇 권이나 팔리는데?" 이런 현실적인 말들이 돌아오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내 꿈을 무시당하는 기분, 심지어 '너는 능력이 없어'라고 폄하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조언을 구하거나 꿈을 말하지 않게 됐다. ("그럼 이렇게 우울하게 살다가 늙어 죽으라는 말이야?"하고 발끈한 적도 있다. 부끄럽게도.) 이번에도, 가까운 몇몇에게 내가 본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니 비슷한 말들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역시나 나를 무능한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더 오기가 생기고, 오기가 들수록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불안함도 커졌다.

하지만, 나 스스로 '꼭 하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하니 조금 더 천천히 나의 상황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됐다. 그러면 서 그들이 내게 했던 질문들을 나에게도 해본다. 그들은 나를 무시하거나 내 꿈을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대단히 좋아해서도 싫어해서도 아니다. 다만 자영업자가 되기 위해 누구나 받아야 하는 질문들을 했을 뿐. 이제야 그 말들에서 검은 안개를 걷어내고 본질을 발견한 느낌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 속 배우 모건 프리먼은 가석방 심사 때마다 "완벽하게 준비됐어요!" 라고 말하지만 심사에서 매번 떨어진다. 그러다 노인의 나이가 된 어느 날 "저는 이제 괜찮아요.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석방 심사에서 통과한다.

나는 마치 그 상황처럼,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아. 서점이 아니어도 괜찮아. 지금 내 일상도 나쁘지 않아." 라고 말해야만 서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일상을 유지하는 힘. 그것이 결국 나를 살게 하니까.

애니메이션 <소울>의 주인공도 꿈에 그리던 공연을 하게 되었지만 그보다 일상의 소중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꿈이나 성공을 다루기보다 평범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렵고 철학적인 내용이다. 얼마 전 아이와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보며 겨우 이 맥락을 이해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 상황이 결국 이런 거구나 싶다.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먼저라는 것.


자 그래서, 서점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추석 이후로 찾기로 했다. 이렇게 시간적 여유마저 주다니 완벽하다. 내가 광야를 걸어가 넥스트 레벨로 가게 될는지 다음 글에서 아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내 미래가 궁금하다.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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