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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ug 27. 2022

"그만 좀 잊어주면 안 될까?"

오늘의 밥값 34 / 이 실패담의 끝은 어디일까


어제 남편이 지난날 한 선배가 했던 잘못을 언급했다. 나는 이제 십 년도 더 된 일인데 그만 좀 잊어주면 안 될까?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가 내가 십 년 이십 년 전 했던 실수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말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서워"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수만 가지 실수와 일들이 떠올랐다. 나의 십 년 이십 년 전 기억은 대체로 그렇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실수와 어린 날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했던 일들. 이런 곳에 적고 싶지 않을 정도로 생각하면 부끄러운 것투성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러나.

당장 어제의 일도, 그제의 일도 나는 대체로 부끄럽다. 나를 향한 이런 시선, 이제 그만해도 될 텐데. 그만 좀 잊어주면 안 될까 라는 말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작가의 치기 어렸던 이십 대 시절의 여행기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그걸 젊은 날의 치기로 치부하는 것을 그 시절 젊은 나는 죽도록 싫어했었다. 당시 내 기준으로 그런 시선은 모두 변절자였다. 사십 대인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변절이라고 부르기도 쉽지 않고, 세상에 나를 맞춰가고 있는 중이라고 합리화하기도 쉽지 않다. 내가 알던 나, 내가 아는 세상과 모든 게 다른 인지부조화 속에서 그냥 계속 멀미 중.



-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나는 나의 실패담으로, 이 삶이라는 여행을 유쾌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도 '변절'이나 '멀미'가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쟁취한 것이라고 깨달을 수 있을까. 나도 나라는 사람의 삶을 소설로 짓고 이야기책으로 다루는 작가라고 본다면, 나의 여행기는 볼만한 여행기일까.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실패들과 어떤 깨달음이 남아 있을까.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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