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한 분이 손을 들더니 조금 머뭇거리며 물었어요. "선생님, MBTI가 뭐예요?" 순간 강연장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하긴 요즘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도 "MBTI가 뭐예요?"로 대화를 시작하는 시대니 까요.
솔직히 저도 처음에는 이 열풍이 좀 이상했어요. 사람을 16가지로 나눈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 유행 속에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게 뭔지 보이더라고요.
얼마 전 한 수강생이 강연 후에 다가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과 30년을 살았는데 최근에 서로 MBTI 검사를 해보고 나서야 많은 게 이해됐다고요. 남편이 주말마다 혼자 낚시 가는 걸 무심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그분에게는 에너지를 채우는 방식이었다는 거예요. 내향형과 외향형의 차이를 이해하고 나니 30년 묵은 서운함이 스르르 풀리더랍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건 누구나 아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자신의 방식이 정답이라고 여기며 살죠. 내가 계획적이면 즉흥적인 사람이 답답해 보이고, 내가 논리적이면 감정적인 사람이 유치해 보입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 하면서 짜증을 내기 일쑤고요.
그런데 MBTI를 들여다보면 신기해집니다. 아, 저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구나. 내 방식이 정답이 아니라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구나. 이런 깨달음이 오면 관계가 달라져요. 판단이 호기심으로 바뀌고, 답답함이 배움으로 바뀝니다.
강연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전혀 다른 감상을 가지고, 같은 상황에서도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아요. 예전 같으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하고 당황했을 텐데, 지금은 그 다양성이 참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세상에는 내가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고 감사해요.
MBTI의 또 다른 선물은 자기 이해입니다. "나는 왜 이럴까?" 하고 자책하던 것들이 단순히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방식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나는 구체적인 계획보다 유연한 흐름을 선호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이해가 생기면 자기 비난 대신 자기 수용이 시작됩니다.
더 좋은 건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점이에요. 모든 유형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니까요. 리더십이 뛰어난 사람도 섬세함이 부족할 수 있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결단력이 부족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혼자 모든 걸 완벽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부족함을 채워주는 게 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이죠.
물론 MBTI가 만능은 아닙니다. 복잡한 인간을 16가지로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예요. 하지만 완벽한 도구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 도구를 통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쓴다는 거예요.
요즘도 누군가는 MBTI 검사를 하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려 하고, 누군가는 상대방의 유형을 물어보며 그 사람을 더 잘 알고 싶어 합니다. 이런 모습들 속에서 저는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욕망을 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되고 싶어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