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겨울비를 맞으면
주먹을 쥐었다
봄비를 맞으면
손바닥을 펼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손이 먼저 알았다
받아들여도 되는 것이 오면
몸은 저절로 열린다
《 작가의 말 》
우리는 비를 맞을 때 손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다.
겨울비가 내리면 본능적으로 주먹을 쥔다.
차가움에 대한 방어, 움츠림.
그런데 봄비가 내리면 어느 순간 손바닥이 펴져 있다.
빗방울을 받고 있다.
아무도 "이제 펴도 돼"라고 말해주지 않았는데,
손이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이 시의 전환점은 "주먹을 쥔다 → 손바닥을 펼친다"라는 몸의 변화에 있다.
같은 비인데 몸의 반응이 정반대라는 것.
그리고 이 차이는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임의 문제다.
쥔 손은 거부이고, 펼친 손은 환대다.
우리는 무언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몸이 먼저 열린다.
마지막 두 행 "받아들여도 되는 것이 오면 / 몸은 저절로 열린다"는
봄비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도, 계절도, 감정도 — 받아들여도 되는 것이 오면 우리는 힘을 빼게 된다.
그걸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안다.
"행인들이 무신경하게 못 보고 지나치는 순간, 세계는 참을성 많은 관찰자에게 그 놀라운 모습을 드러낸다" - 칼 폰 프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