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흘림, 완벽을 향한 인간의 곡선

완벽을 포기한 완벽함

by 수담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을 처음 봤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똑바른 것 같은데 미묘하게 곡선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해설사님이 말씀하셨어요. "저 기둥 중간이 살짝 불룩하죠? 저걸 배흘림이라고 합니다." 수학교사인 제가 완벽한 직선이 아닌 곡선을 보고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30대 중반, 건축 관련 책을 읽다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에도 같은 배흘림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엔타시스라는 이름으로요.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눈은 긴 수직선을 볼 때 중간이 오목하게 들어간 것처럼 착각한다고요.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장인들이 기둥 중간을 살짝 부풀려서 '진짜 곧게'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때 참 놀라웠습니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직선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곡선을 선택했다는 게요.


더 놀라운 건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의 장인도 같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리스와 한국,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백 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두 장인이 모두 '인간의 눈'을 먼저 생각했다는 거죠. 수학 공식으로 계산한 완벽한 직선보다 사람의 감각에 맞는 곡선을 택한 거예요.


50대 초반, 인문학 강연을 준비하면서 직접 부석사를 찾아갔습니다. 무량수전 기둥 앞에 한참을 서 있었어요. 멀리서 보면 곧아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분명히 곡선이더라고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게 바로 '완벽을 포기한 완벽함'이구나 하고요. 장인은 완벽한 직선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일부러 곡선을 그려 넣은 거예요. 자연 속에서 너무 이질적인 직선보다, 산의 능선처럼 부드러운 곡선이 더 조화롭다고 생각했던 거죠.


며칠 전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직선과 곡선에 대해 설명하다가 문득 교실 기둥을 봤어요. 공장에서 찍어낸 듯 완벽하게 곧은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더라고요. 기능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왠지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천 년 전 장인이 손으로 깎아 만든 배흘림기둥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요즘 우리는 너무 완벽한 직선만 추구하는 건 아닐까 하고요.


배흘림은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굽어도, 조금 불완전해도, 그게 더 인간적이야." 수학적으로 완벽한 답보다, 사람 마음에 와닿는 답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오늘도 저는 그 곡선을 닮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