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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광 Sep 20. 2017

#11 경제 수명을 단축시키는 장애물들

이직에 영향을 주는 연령별 컷오프

영화관 매표소 근처에 있는 전자 오락실에는 자동차 레이싱 게임이 한두 대씩 설치되어 있다. 레이싱 게임의 화면 한 구석에는 도로 지도를 간략하게 그린 로드맵이 있고, 다른 한 구석엔 현재 랭킹이나 남은 시간이 쓰여져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구간을 통과하면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더 달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 안에 통과를 못하면 속도가 떨어지면서 Game Over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실력이 좋아 각각의 구간을 계속해서 통과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통과할 때마다 주어지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기 때문에 대부분 서너 바퀴를 돌면 게임이 끝난다. 이 게임은 우리네 직장 생활을 떠오르게 한다. 




연령별 컷오프가 적용되는 직업
특정 구간을 정해진 기간 내에 통과하지 못하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야만 하는 직업들이 있다. 군인이 그러하다. 일반 사기업의 경우 정년 연한은 있어도 직급별 연한을 가지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런데 군인들은 직급별 정년 연한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 군인 정년표 ]


군인들은 계급별 연령 정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근속 정년과 계급 정년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의 표에 따르면 중령의 경우, 53세 이전에 대령으로 진급을 못하면 중령으로 전역을 해야 한다. 복무 기간이 32년을 넘어서도 전역을 해야 한다. 특정 계급을 몇 년 이상 할 수 없다는 계급 정년도 있다. 법적으로는 장성급에만 해당되지만 실상은 거의 전계급에 적용된다. 왜냐하면 연령 정년에 걸려 전역을 하지 않으려면 진급을 통해 해당 계급을 몇 년 안에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표현만 바꾼 것일 뿐 연령 정년은 계급 정년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연령별 컷오프는 변형되어 다양한 형태로 커리어 관리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전투기 조종사의 경우, 비싼 교육을 국비로 받기 때문에 의무 기간 동안 복무를 해야 하는 규정이있다.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면 전역을 하고 민항기 조종사를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 민항기 조종사로의 이직은 연령 제한이 있다. 그러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군인으로 남아서 육군 장성이 되는 것을 노려보던가 민항기 조종사가 되어 60세 정년에 높은 연봉을 목표로 할 지를 선택해야 한다. 많은 경우 군인으로 남아서 장성이 되는 것을 선호하지만 그랬다가 연령 정년에 걸려 진급을 못하게 되면 민항기 조종사도 되지 못하고 장성도 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장성이 되지 못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이른 나이에 조기 은퇴를 해야할 수도 있다. 


일반 기업에서의 연령별 컷오프

정년 연한이 사규로 성문화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직급별 정년 연한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증거만 없을 뿐 생각 외로 많은 사기업들이 계급 정년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규모가 큰 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계급 정년을 운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계급 정년은 임원 승진 시기에 찾아볼 수 있다. 승진 연한을 채운 고참 부장들은 임원 승진 후보자가 된다. 승진 후보자가 된 첫 해에 승진에서 누락되면 “책장이 한 장 넘어갔다”라고 표현된다. 그 다음 해에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지는데 이 기회마저 놓치면 영원히 임원으로 승진할 기회가 없어진다. 


회사 입장에선 책장이 두 번 넘어간 사람들이 달가울 리 없다. 더 늦게 들어온 후배 기수가 임원이 되면서 위계 질서가 이상해진다. 책장이 넘어간 사람도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승진에 대한 비전이 없으니 열과 성을 다하기가 쉽지 않다. 최대한 길게 다녀서 자녀 학자금이라도 지원 받는게 목표가 된다. 명퇴금 많이 줄 때 많이 받고 나오는 것도 목표가 된다. 회사는 조직 분란이 덜 생기는 선에서 이런 사람들을 내 보내는게 목표가 된다.


임원 승진에서나 적용되던 계급 정년이 부장 레벨까지 혹은 그 이하까지 내려 오는 조짐들이 여러 곳에서 관측된다. 특정 팀이나 업무를 총괄 담당하는 것을 보직이라고 하는데, 보직이 있는 사람만 부장으로 승진하는 등의 형태로 계급 정년이 확산되고 있다. 승진 연한이 지났는 데도 보직이 없이 만년 차장에서 머무는 사람이나, 이미 부장이 된 상태에서 보직 없이 떠 도는 부장들도 승진 못한 고참 부장과 비슷한 상황으로 가게 된다. 


중견 중소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추세에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안전지대라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연령별 컷오프가 중소기업에서 상대적으로 덜해 보이는 이유는 구조 조정 노하우가 없어서 구조 조정을 쉽게 추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구조 조정 노력 대비 얻게 되는 베너핏이 크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이유이다. 그렇지만 연령별 컷오프에 대한 니즈는 오히려 대기업에 비해 더 클 수 있다. 경기 변동에 따른 실적 압박이 더 자주, 더 크게 오고, 구조 조정에 따른 Reputation risk를 대기업에 비해 덜 신경 써도 되기 때문이다. 


직장 이동시의 연령별 컷오프.
연령별 컷오프 메커니즘은 일반 기업 내 승진뿐만 아니라, 경력직들의 회사간 이동에도 영향을 준다. Job Market이 넓고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커버한다고 해서 그 안에서 유통되는 “이직자”들이 연령, 역량, 직급의 제약 없이 모든 경우 다 이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회사가 경력자를 리쿠르팅하는 과정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수록 더 까다로운 품질 기준이 따라붙는다. 직장 내 이동 보다 더 심한 연령별 컷오프 메커니즘이 작동된다. 


경력직 Job market은 필요한 역할과 역량에 따라 다섯 가지 정도의 세부 시장으로 분류된다. 첫째, 특정 업무를 최소 2년 이상 경험해서 바로 유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리급 이하 시장. 둘째, 특정 업무를 수행하면서 팀원 관리도 가능한 과장급 시장. 셋째, 해당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을 관리하고 경우에 따라 영업도 뛸 수 있는 차부장급 시장. 넷째, 인맥을 바탕으로 조직 관리, 영업, 경영 관리를 할 수 있는 임원급 시장. 다섯째, 비전을 만들고 정치도 하면서 사업을 전개할 경영자 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시장이 세분화되면 각각의 시장별로 세분화된 니즈가 나타나는데 그 니즈는 나이, 직급, 역량의 세 가지가 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 시장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각 회사는 각 영역대별로 선호하는 나이대가 있다. 나이가 너무 많거나, 너무 어린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팀장보다 나이 많은 팀원, 임원보다 나이 많은 부장은 이직하기 어렵다. 팀장인 차장보다 나이 많은 과장급 팀장도 마찬가지다. 둘째, 아래 단계에서 윗단계로 승진하며 이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분야별로 역량셋이 다르듯 직급별로도 역량셋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직관리 경험이 없는 사람을 부장급이나 임원급으로 뽑지 않는다. 탁월한 인재를 스카웃하거나, 해당 분야 인력에 품귀 현상이 있을 때,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동할 때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흔한 케이스는 아니다. 세째, 앞의 두가지 특징이 조합된 결과로 특정 나이대가 되기 전에 특정 직급과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직이 아예 어려워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나이 마흔에 만년 대리인 사람은 이직을 해서 과장을 달기도 어렵거니와 이직 자체가 어려워 지는 것이다. 


나이, 직급, 역량의 교호작용

내가 보유한 역량이 내 급여와 직급에 영향을 끼치는 원인변수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한다. 그런데 내가 보유한 역량이 나이, 직급과 교호작용을 일으키며 경제 수명에마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전자 오락실에 있는 레이싱 게임처럼, 특정 나이대에 특정 역량과 직급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다음 관문까지 갈 기회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직급이 올라가면 회사 내에서의 경제 수명뿐만이 아니라 회사간 이동 가능성을 고려한 경제 수명도 같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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