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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광 Sep 14. 2017

#8 전문직 종사자의 경제 수명

라이센스 비즈니스의 종말

자동차 메이커 벤츠의 타겟 고객군은 하나다. 직업이 부자인 사람들이다. BMW는 타겟 고객이 둘이다. 직업이 부자인 사람과 죽기 전에 외제차 한 번 타보고 죽겠다는 보통 사람이다. 타겟 고객들이 자동차를 구매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차감 때문이다. 하차감은 차에서 내릴 때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받는 느낌을 말한다. 


직업군별로 경제적 수명은 조금씩 다르다. 경제 수명이 가장 긴 부류는 독일 자동차의 타겟 고객과 같다. 본인 직업이 부자인 사람이다. 어설픈 투자로 망하지만 않으면 평생 가는 직업이다. 두번째로 경제 수명이 긴 부류는 본인 아버지의 직업이 부자인 사람이다. 이 역시 평생 가는 직업이다. 세번째로 경제 수명이 긴 부류는 전문직 종사자이다. 그런데 마지막 세번째 조건은 예전 같지 않을 전망이다. 


직군별로 경제적 수명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누구나 선호해 왔듯, 전문직 종사자는 수명이 길고, 수익의 규모도 크다. 자격을 딸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 제도나 법률에 의한 잠재 경쟁자의 제거, 이해 관계에 기반한 동종 종사자들의 텃세 등 여러 진입 장벽들로 인해 그런 효과가 발생해 왔다. 그런데 국가 보증 라이센스가 제공하는 특권들은 점점 옛날 예기가 되어가고 있다. 공인회계사가 그러한 쇠락의 길을 가장 먼저, 짧고 굵게 경험했다. 한 때 변호사보다 더 실속있는 자격증이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공인회계사가 신분을 상징하는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취직의 문호를 넓혀 주거나, 수당을 좀 더 받을 수 있는 수준 정도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엔 변호사도 비슷한 길을 걸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선 국제변호사들이 희소가치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발급된 변호사 자격에, 유창한 영어를 쓰면서, 국가간 법률 이슈를 다루는 국제변호사들은 겉모습과는 달리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수요 대비 공급이 과다해서이다. 자격이 있어도 실무 경험이 부족한 경우 잡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취직하려면 취직했던 경험이 있어야하는 사회 초년생들의 아이러니가 국제변호사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실무 경험이 약한 국제변호사들은 대접을 받기 전에 경험을 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조업으로 치면 지방 소재 중소 제조업체에 해당하는 작은 기업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고, 그 이후에야 원하던 회사를 겨우 노려볼수 있는 상황이다. 좋은 직장을 다니다 유학을 가서 자격을 따고 온 어떤 사람의 경우, 떠나기 전 다니던 직장에서 4년 전 그대로의 월급과 직급으로 오퍼를 받아 입사를 고민해야 했다고 한다.     


국내 변호사의 경우, 아직까지는 양호한 상황이지만 2~3년 후를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법학 전문 대학원으로 인해 공급이 넘쳐나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에 반해 시장은 여전히 사법고시 출신을 선호하고있다. 게다가 특정 대학 출신자들에 대한 선호 경향이 커서 자격이 있다고 다 같은 자격이 아닌 상황이다. 특정 대학 출신자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학벌이 좋은 사람이 일을 잘해서가 아니다. 법률적 이슈의 특성상 논리적으로 풀리지 않는 이슈가 인맥으로 풀리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규모가 큰 계약의 경우 현업 실무자들이 계약 문항을 조율하다 양사 법률팀의 대면 조율로 넘어가게 된다. 법률적 난항을 가장 잘 해결하는 논리는 "저 어디어디 몇기입니다.” 혹은 “형님, 이번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인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자리를 이미 잡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에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있다.그래서 변호사라 해도 주류에 끼지 못할 경우 안정적인 급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들마저 생겨나고 있다. 최근엔 변호사가 부동산 중개를 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했는데, 기존부동산 업체보다 훨씬 적은 수수료만으로도 계약이 가능해 여러가지 사회적 이슈와 함께 법정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 이유는 변호사들이 전통적인 법률 업무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 외에 대표적인 전문직 종사자인 대학교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학령 인구의 감소로 향후 4~5년 내 서울권 4년제 대학의 유효 경쟁률이 1:1 수준으로 내려 간다고 한다. 교육 과열 양상이 해결되는 것은 무척 반길 일이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서울 거주자 중에서 공부를 잘해 지방의 의대나 교대로 갈 사람도 있겠지만 지방 재학생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고려하면 지방 대학에는 정원 미달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정원 미달이 발생한 대학은 학과를 통합하게 되며, 통합당한 학과의 교수는 학교를 나가야 하게 된다. 인기가 없어 통합되는 학과의 교수들은 실업 수당을 받는 실업자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교수 시장 전체도 시장의 원리를 따르게 되어, 유휴 공급자가 늘게 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학에 다니는 교수들도 몸 값이 떨어지고, 직업 불안정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그럼 의사는 어떨까? 의사 공급 시장은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교수 시장에 비해 가치 하락 현상이 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의사에 의한 사회 변화가 실제 가능한 수준 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 관련 업계 현장에 종사하는 주변 지인들의 전언이다. 2016년 기준, 검진 영역에서 인공지능 의사에 의한 검진 정확도가 종합병원 의료진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환자들의 선호도에 있어서도 인공지능 의사가 종합병원 의료진을 능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통계들은 그야말로 통계일 뿐이다. 인공지능 의사의 도입이 마케팅적 목적의 달성 외에 기술적, 의학적 성과를 제대로 내고 있지 못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도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양적 진화에 의한 질적 변화의 순간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올 가능성이 없잖아 있겠지만 한 손으로 꼽을 수있는 가까운 미래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의사들의 직업 안정성은 당분간 큰 변화가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자는 망해도 3대가 가고, 준치는섞어도 준치이다. 전문직 종사자의 직업 안정성은 타 직종 대비 월등히 높고 수익의 규모도 높은 것이사실이다. 그러나 무한 경쟁 원리가 도입되면서 자격만으로 평생이 보장되는 직업군은 10년 내 대부분 사라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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