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뭔가를 시켜야 하는데 아무도 시키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는 벌써? 냐고 말하기도 할, 그러나 나에게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린 승진을 했다.
승진축하를 받던 직장 선후배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승진하면 어떤 기분일까'를 기분 좋게 상상하던 시기가 무색하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 최종합격 문자를 받던 그 느낌으로 말이다. (시험 합격할 때 그 안도감보단 덜하긴 하다) 덤덤한 안도감은 축하연락으로 금세 채워졌다. 앞으로 공직생활에서 이만큼 더 많은 축하를 받을 일이 있을까 싶었다.
엄밀히 말해 직급은 사무관이지만 과장 보직을 받는 직무대리였다. 지방은 중앙과 달리 서기관 승진을 하면 바로 과장보직을 받는다. 작게는 한두 명, 많게는 세네 명과 일하던 팀장이 다음날 열명이 넘는 부서의 장이 되는 것이다. 굉장히 영광스럽고, 한편으로 굉장히 부담스럽다.
과장으로서 첫 주는 말 그대로 안절부절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시켜야 하는데 아무도 시키는 사람이 없다.
이 시간쯤 되면 뭔가 지시를 받아야 되는데 사무실이 조용하다. 아 내가 시켜야 되는 상황인거지.
간간히 보고하러 와주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했다.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보고 해주는 말들과 문서를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듣고, 이해하려고 했다. 이거 이해 못 하면 나는 오늘 밥값 못하는 거라는 비장함을 갖춘 집중력이었을 테다. 물론 눈치채지 못하셨겠지만.. 마치 전투에 나가는 장수 느낌으로 정신무장을 하고 보고 받았다.
'정신 차려, 얼타는 모습 보이면 안 돼..'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도 녹초가 돼서 퇴근을 했다.
보고 받는 내용을 파악할 때 가장 신경 쓴 건 그 내용의 히스토리였다. 조직생활에서 문서를 아무리 꼼꼼히 봐도 맥락(context)을 모르면 그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다. 문서로 보면 엉뚱해 보이는 행사나 사업들은 웬만하면 연유가 있다. 그래서 문서만 보고, 이걸 왜 이때 하냐, 이런 게 왜 들어갔냐 평가하면 안 된다. 대화를 충분히 하고 판단해야 결정을 번복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부서장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적절한 결정을 얼마나 명확하고, 신속하게 내려주느냐다. 결정받는 입장(팀장)이 되어보면 그런 상사가 좋단 걸 경험했으니까.
그렇게 3주 정도는 앞으로의 일들보다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