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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Apr 15. 2021

스마트폰이 뭐길래.

스마트폰의 기능이 게임은 아니겠지.

 게임으로 폭발한 아이

 그 아이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꾹 다문 입에 감정을 숨긴 멍한 얼굴, 나의 눈길을 거부하는 눈동자는 지금은 말할 상황이 아니니 자신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신호와 같았다.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고 명랑하게 안부를 물었다간 무안을 당하기 일쑤다. 학원에 오기 전, 집에서든 친구와의 관계에서든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어떤 말도 필요 없다. 이럴 때는 모른 척이 답이다. "어서 와" 한마디를 건네고 자리에 앉는 아이를 지켜봤다. 수업 내내 말이 없었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 수업 시스템에서 아이의 표정은 다른 아이들까지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웃음도 농담도 없이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가려는 아이를 불러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훈아, 너 오늘 무슨 일 있었니? 기분이 영 별로네."


특별히 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는데 아이의 반응이 예상외로 적극적이었다. 마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대답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헉, 내가 뇌관을 잘못 건드렸군'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는 나에게 묻고 있었다.

 

 "엄마면 다예요? 엄마면 함부로 남의 핸드폰을 봐도 되냐고요? 왜 엄마는 남의 핸드폰을 허락도 받지 않고 함부로 만지고 마음대로 지우냐고요.?"


 내가 물었으니 답을 들어야 하는 사람도 나여야 맞는데 뭔가 추궁당하는 기분에 움찔했다. 아이의 말을 통해 우울함의 출처를 밝혀냈다. 아이는 엄마가 스마트폰을 몰래 만졌고, 깔아놓은 게임을 모두 지워 쌓아 놓은 점수를 잃었다는 것에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라 그 아이의 상실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여 섣부른 충고는 거뒀다. 단지 엄마가 허락을 받지 않고 핸드폰을 만진 건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지워져 버린 게임은 어찌할 수 없으니 그냥 잊으라 했다. 아이의 긴 한숨 소리로 문제가 해결되려나 싶었다. 그런데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이의 엄마가 전화를 한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격앙된 목소리로 엄마의 상태를 짐작했다. 아이는 학원에 오기 전 엄마와 1차전을 치른 모양이다. 학원으로 와 버린 탓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봉합되었던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엄마가 전화를 하면서 내가 건드린 뇌관에 불이 붙었다. 아이는 폭발했다.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쏟아내며 통화를 시작했다. 한참을 울며 통화하던 아이가 전화를 끊고 집으로 가면서 학원에서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물론 집에서 또다시 전쟁이 치러질 건 자명한 일이었지만.


 얼마 후 아이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속상하다는 말과 창피하다는 말을 번갈아가며 자신의 속내를 내보였다. 줏대 없이 난 엄마의 말에도 수긍을 했다.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인생 선배가 하는 말이라며 앞으로 아이와의 관계에서 발생할지 모를 일들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이런 상황이 마지막이면 좋겠지만 앞으로 불쑥불쑥 겪게 될 일일 테니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위협적인 위로도 곁들였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공유하며 부모로서의 동질감을 느꼈다.


 요즘은 중2병뿐만 아니라 초5병과 심지어 빠른 초4병도 본다. 신체적 성장이 정신적 성장을 빠르게 앞질러 감정 조절을 실패한 초등생이 늘어난 탓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탄생시켰을 때 감격에 겨워 환호성을 질렀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전화기와 인터넷을 손안에 넣을 수 있는 기기는 놀라움 자체였다. 잡스의 융합과 통섭은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켰다. 그의 세계는 전화기와 인터넷을 너머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 냈고 지금도 그 일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체계나 기기는 무리라는 듯 여기저기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사용상의 문제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앞의 예처럼 초등학생에겐 게임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비단 초등학생만의 문제는 아니니 각자가 자신의 스마트폰 사용법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누가 뭐래도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와는 뗄 수 없는 기기가 되었다. 앞으로 그 관계는 지금보다 더 밀착될 것이다. 기기 사용에 절제의 미덕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올바른 사용만이 감정싸움을 없애는 방법이다. 대화와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부모의 지시와 견제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화를 끊은 엄마가 아이와의 감정을 잘 섞어 융합의 꽃을 피워냈으면 좋겠다. 잡스가 생각한 스마트폰이 게임을 위한 도구는 아녔을 텐데 안타까움이 사그라들지 않는 아침이다. 옆에서 스마트폰이 떨고 있다.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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