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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r 27. 2020

재활용을 잘하면 지구는 덜 아프겠지?

남편이 내민 와인잔은...

"탄산음료는 안 돼!"


"죄송해요, 어머니. 사랑해요~" 아들이 다가와 내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빈다.


"아이~고, 저리 가." 완강하게 밀치지만 장정이 다 된 아들의 힘은 감당할 수가 없다. 그저 목을 맡긴 채, 두 팔을 떨구고, '니 알아서 해라' 한다. 엄마의 항복이 재미없어진 아들이 목을 풀어준다.


"탄산음료 많이 마시면 뼈 약해진대잖아"


"그러면서 사놓는 이유는 뭔데요?"


"아무튼, 몸에 안 좋으니까 진~짜 먹고 싶을 때만 조금씩 마셔"


"그럼요. 감히 누구 말씀이라고ㅎㅎㅎ"



 

 그렇다. 탄산음료를 사놓은 사람은 나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아들을 위해 먹을 것을 살 때면 하나씩 꼭 챙겨 오는 단순히 아들이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그건 건강보다는 뭐라도 먹이겠다나의 나약한 마음이 만들어 낸 어리석은 행동이다.


 난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볼 때면 마음이 약해진다. 그게 건강에 좋다면야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건강에 별 도움이 안 될 땐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럴 때면 늘 건강보단 좋아하는 것에 손을 내미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만다.


 보통의 엄마라면 음료수 하나에 무슨? 하겠지만 아토피로 1년을 고생한 아들을 둔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 난 아들의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꾸 아들이 좋아한 음식에 마음이 약해지니 부끄럽지만 난 아들을 사랑하는진 몰라도 훌륭한 엄마는 못 되는 게 분명하다.


 흐뭇하게 아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눈치 없는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어 아들의 음료수를 따르고 있다.


"ㅁㅈ아빠, 지금 뭐 해요?ㅈㅇ이 건데!"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내뱉은 나의 말에 남편이 깜짝 놀랐다.


"뭐야, 나도 좀 마시자. 비싸지도 않은 음료수 하나 가지고 왜 그래? 내가 낼 퇴근할 때 배로 사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몸에 좋지도 않은 걸 뭘 또 많이 사 와요"


"그래. 몸에 안 좋으니까 내가 다 마시겠다는 거 아냐. 아들을 위해서.

아들, 넌 몸에 좋은 과일, 채소 이런 거 먹어라. 몸에 나쁜 건 아빠가 다 먹어치울 테니까."

그러더니 남은 음료수를 탈탈 털어 한 방울까지 마셔버린다. 그러고는 싱크대로 가서 음료수통을 잘 씻은 후 컵 하나를 만들어 와 내 앞에 내려놓는다.


"자, 와인잔. 선물"

남편이 만들어 온 와인 잔은 우리 집에 있는 와인잔을 닮아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나의 말에 기분이 나빴을 법도 한데 이렇게 나를 웃게 만드는 남편이라니.. 미안했다.


 남편이 만든 컵을 보고 있자니 플라스틱 음료수통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사용하셨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음료수를 마시고 나면  그 통을 잘 씻어 보리차며 옥수수차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셨다. 그걸 또 한 번 사용으로 끝내지 않고 달걀껍질이나 쌀을 넣어 깨끗이 씻은 후 사용하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다 유리병에 담긴 오렌지주스가 나오면서 플라스틱 물통의 사용은 유리병으로 교체되었으나 음료수병의 재사용은 계속되었던 거 같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쓰레기가 넘쳐나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것이 풍요로워진 지금은 버리는 것도 자연스러워져 주변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지구는 오염되어 가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건강을 잃었고, 버려진 플라스틱들은 역습을 시작했다.

 

 우리는 과학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은 더 편리해지고 건강해지리라 믿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좋게 좋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풍요로워진 삶 속에서 우리가 버린 물건들은 쓰레기가 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아끼면서 무엇 하나 함부로 버리지 않았던 시대가 더 행복으로 다가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들이 마셨던 음료수 하나가 나에게 와인잔을 남겨주고, 엄마의 물병을 생각나게 했으며, 프라스틱으로 오염된 지구를 생각하게 했다. 사소한 일에서 과거를 자꾸 떠올리는 건 내가 나이들고 있다는 증거 같다.  

비오는 봄날이라 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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