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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22. 2019

나는 자연인으로 살기 싫다

노후에는 도시인으로 편하게 살아요.

왜일까? 왜 그 프로그램에 그리 열광했을까?

한 때 우리 집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 중에 하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였다.

정확히 말해 어머니와 남편이 열광했다고 하는 게 맞다.


나는 그 프로를 싫어했다.

자연 속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는 그들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라며 깎아내렸고,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서 살아야 한다며 그들의 삶의 방식을 비난했다.

물론 그 프로에 출연한 모든 사람들이 사회를 등진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스스로 자연의 품에 안긴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라도 말을 해서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토록 그들의 삶을 싫어했던 이유는 평소 남편이 동경했던 삶이 바로 그런 자연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을 싫어했다. 깔끔한 구조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아파트에서 편하게, 안락하게 사는 것이 내가 꿈꾸던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삶에서도 나 자신이 멀어졌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주택을 하나하나 가꾸며 살아가는 이 일도 쉽지 않은 일인데 사람조차 없는 곳에서 자연과 친구 하며 살고 싶은 마음은 아직까지, 네버, 전혀 없다. 그런데 남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땅을 보러 다니며 퇴직 후에 집 지을 곳을 찾았었다.


남편은 늘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며 날 이끌었다. 말 그대로 바람이나 쐬자며 나선 길에선 언제나 가슴을 뻥 뚫어주는 멋진 경치를 보았다. 그러나 나에겐 그것이 끝이었다. 그런 곳은 경치는 좋았지만 살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아직도 남편은 아쉬움에 떠올리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풍수지리학적으로도 좋은 장소라 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서 아래쪽에 있는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그런 장소. 옆으론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있어 그 옆에 정자를 지으면 딱 좋을 거라는 그런 장소. 그러나 그 땅은 우리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다른 사람에게 매매되고 말았다.


남편은 며칠을 아쉬워하며 그곳을 찾고 또 찾았다. 그러나 공사가 시작된 것을 보고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난 그곳을 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혹시라도 그곳이 우리의 소유가 되었다면 우린 언젠간 그곳에 들어갔을 것이다. 남편의 머릿속엔 거기에 지을 집에 대한 설계가 다 되어 있었으니.


나는 산골에서 자연인으로 살기 싫다. 탁 트인 경치, 시원한 개울물 소리, 나무들에게서 풍기는 풋풋한 자연의 향기. 그런 것은 가끔씩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면 족하다. 가끔 찾아가 도시의 묵은 때만 씻으면 된다.


지금은 시청이 줄었지만 채널을 돌리다 혹시라도 다시 보게 될까 봐 조마조마 한 프로가 여전히 '나는 자연인이다'이다. 아직은 두려움이 남아있다. 남편의 미련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자연인이다'의 또 다른 시청자 어머니께선 자연인들이 길러먹는 채소며 나무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공책에다 적어놓고 우리에게 일러 주셨다. 무엇이 어디에 좋고, 채소는 어떤 방법으로 키워야 하는지도 알려 주셨다. 어머니는 그들의 삶을 신기해하셨으며, 왜 그런 산골에 들어가 사는지 그들의 사연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셨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어머님의 호기심은 보는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단지 보는 것을 즐기셨을 뿐, 그렇게 살고 싶어 하지는 않으셨다. 만약 어머니까지 그런 산골로 들어가 채소를 가꾸며 사는 삶을 꿈꾸셨다면 나는 독립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은 이 도시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셨고, 도시의 필요성도 느끼고 계셨다.


자연의 맑은 공기가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닌 이상 노후는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누려야 할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람만큼 좋은 환경은 없다. 사람과 부대끼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다 그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생각일 뿐 남편은 아직도 공기 좋은 곳에서의 삶이 마음의 여유와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니 나는 아직도 '나는 자연인이다'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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