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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y 20. 2021

우리 가족이 좀 특별한가?

EBS '가족이 맞습니다' 섭외를 거절하고

브런치에서 제안을 받았습니다


 "난 나가 있을 테니 너희들끼리 알아서들 해라.

 "어머니~, 저도 사양합니다."


어머니에 이어 아들까지 거절 의사를 밝혔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그들의 말에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어버렸다.

 

 "아무래도 우리 가족에게는 맞지 않는 거 같지? 솔직히 나도 좀 그래. 무슨 뜻인지 알지"

살살거리는 눈웃음이 얄밉다.


 누구 한 사람 순순히 동의해 주는 이는 없었다. 나라고 마냥 좋았던 건 아니지만 죽기 전에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올까 싶어 고민에 고민을 하다 겨우 꺼낸 말인데 모두들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절 멘트를 날려버렸다. 거기다 내 가슴을 심쿵하게 만든 제안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나 익은 감자 찔러보듯 콕콕 찔러봤을 거란 말과 함께 좋은 거면 너에게 섭외가 들어왔겠냐는 식의 발언으로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나의 능력이 별로니 그에 맞는 제안이 들어왔을 거란 뜻으로 들려서다. 놀람도 호응도 없는 일에 호들갑을 떨며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쉬운 마음만 간직한 채 조용히 접기로 했다.


 다음 날 아깝디 아까운 제안을 손끝에서 놓았다. 나의 손가락을 타고 속절없이 빠져나간 글자들이 서럽게 나를 바라봤다. 미련이 남아 그것들을 붙들고 싶었지만 다른 인연이라도 어서 만나게 해 주려면 보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찾아온 흥미로운 제안을 떠나보내야 했다.

 


 일의 시작은 브런치에서 온 제안으로부터다. 그 제안은 EBS '가족이 맞습니다' 팀에서 보낸 제안이었다. 그 팀의 작가님은 내가 브런치에 쓴 글 '아파트 말고 한옥에 살기로 했습니다'를 읽고 출연 제안을 하셨다고 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제안이 있었지만 가족 모두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 제안은 처음이어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티브이 출연이라는 신박한 제안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호응을 기대하고 가족들에게 의사를 물었던 거다. 그런데 반응이 웬걸 가족 모두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프로그램 취지와 우리 가족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나 뭐라나. 말수 적은 우리 집 식구들에게 시트콤은 어울리지 않는다 했다. 거기다 사생활 공개는 좀 그렇지 않냐는 이유가 첨가되었다. 글로 집안일을 알리는 것조차도 싫어하시는 어머니의 거절은 예상한 바였지만 아들과 남편의 단칼 거부는 적잖은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내가 글을 써서 얻은 행운이니 고민하는 척이라도 했다면 안타까움은 덜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해진 답을 말하듯 결정을 내려버렸으니. 잠시 머릿속으로나마 허황된 꿈을 꾸었던 나는 서운함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서운함이야 당연한 것이었지만 나 역시 부담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기에 빠른 결정은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다.


 섭외가 들어온 '가족이 맞습니다'란 프로그램은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함께 살게 된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겪게 된 감정의 충돌을 유쾌한 다큐멘터리로 풀어내는 시트콤이었다. 프로그램을 찾아보니 평범하다기보다 조금은 특별한 가족들의 동거가 있었다. 육아를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온 친정엄마와의 동거가 있었고, 외국인 사위와의 동거도 있었다. 성격이나 사연이 특별한 가족과의 동거도 있었고... 모두들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숨은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우리 집의 경우는 시부모님과의 동거를 주제로 생각했던 거 같다. 가부장적 사고를 지닌 남편과 그 사고를 대변이라도 하듯 사는 곳은 한옥. 프로그램의 취지에는 어느 정도 부합되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사고가 섭외를 막을 거란 생각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이 여러 갈래로 열려있지 않으니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통로가 전혀 없었다는 걸 잊은 것이다. 거절이 예측되는 상황이었으나 그걸 예측하지 못한 잘못이 있었다.


 거절이란 거절하는 사람보다 당하는 사람이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다. 그러나 나의 거절은 상대방보다 내가 더 상처를 입었다. 내가 더 아파서다. 거절하는 대상이 거절을 당하는 대상보다 아쉬움이 크며 이렇게 상처를 받게 되어 있었다.


 이 글을 쓴 목적은 하나다. '가족이 맞습니다'팀에서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간단한 거절의 문자였지만 그 간단함 속에 모두 담아내지 못한 고마움과 아쉬움이 있었다는 걸.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는 걸. 어디에서 언제든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서다.


 제안을 받고 생각해 본다. 3대가 모여 사는 우리 가족, 그렇게 특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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