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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04. 2019

조커, 사회가 만든 악당인가? 가정 폭력의 희생양인가?

반영웅, 영화가 불편하다.

드디어 베니스가 선택한 영화  <조커>를 봤습니다.

영웅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대결하도록 하는 등의 유치 찬란한 쇼를 벌였던 DC가 모처럼 탄생시킨 제대로 된 작품을 봤습니다.


DC의 영웅들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배트맨입니다(개인적인 생각임). 영웅이지만 암울함과 슬픔을 담고 있는 배트맨은 영웅 이전에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잘 드러내는 인물이기 때문이지요.


영화 <조커>는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인  조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악당 조커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 다른 연기자의 연기가 어떠했는지 평가할 수조차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호아킨 피닉스의, 호아킨 피닉스에 의한, 호아킨 피닉스를 위한 영화였다고 감히 평가합니다

그만큼 그는 호연을 펼쳤고, 보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조커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 하면 망설임 없이 '불편함이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악당이 주인공인 것에서 오는 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이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조커는 악당입니다. 잔인하게 사람을 살해하고도 감정의 동요 하나 일으키지 않은 전형적인 사이코 패스적 기질의 악당.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평범했던 남자 아서가 어떻게 악당 조커로 변해가는지를 봅니다


영화를 본 후 생각해 봤습니다.

"조커, 그는 사회가 탄생시킨 악당일까? 아님 가정 폭력이 낳은 희생양일까?'


조커가 되기 전의 아서 플랙은 평범했으나, 불안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신적 문제로 상담을 받는 모습과 버스에서 자신의 병을 알리는 문구를 내보이는 장면을 통해 그가 보통의 사람들의 생활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그를 보호해 주지 않았고 고립시킨 후 그를 버렸습니다.

아서의 광기는 버림받는 순간 나타납니다


그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평범한 그의 꿈은 그를 불행으로 이끄는 악마의 손길이 되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코미디언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웃음은 다른 사람들보다 반응 속도가 느렸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은 그를 사람들 틈에서 외딴섬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는 웃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웃었고, 웃기지 않는 내용으로 사람들을 웃기려 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사람들을 웃기지 못했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됩니다.


아서 플랙의 광기는 세 명의 금융인을 살해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기차에서 여자를 희롱하던 그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그는 여자를 구한 영웅이 됩니다

아서에게서 시작된 광기는 자연스럽게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고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그 광기에 전염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아는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이 골목길에서 살해당하는 사건도 발생합니다.

아서의 광기는 고담 시의 문제점 속에서 너무도 쉽게 퍼져나갑니다. 고담시가 건전한 도시였다면 아서가 조커로 탄생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결국 고담이라는 문제 사회가 조커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서를 악당으로 만든 다른 요인을 찾으라면 엄마의 학대와 방임을 들 수 있겠습니다.

아서는 어릿광대 노릇을 해서 엄마를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퇴근 후 엄마와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 코미디쇼를 보는 일은 아서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아서는 코미디쇼에서 웃음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꿈을 꿉니다.


시장 후보로 나선 토마스 웨인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는 아서의 어머니는 토마스 웨인에게 편지를 보내 답장을 기다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결코 자기 모자를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반복하지요.


아서 엄마의 말속에서 '토마스 웨인은 자신의 집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책임지는 훌륭한 인품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설마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겠어'하는 불길한 의심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의심은 적중하고 말았습니다.


엄마의 편지를 뜯어본 아서는 토마스 웨인이 자신이 아버지란 사실을 알아냅니다. 아서는 토마스 웨인의 집을 찾아가 자신이 토마스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으려 합니다. 토마스 웨인의 집에서 만난 브루스 웨인,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미래의 배트맨이 왜 그렇게 잘생겼는지 한참을 봤습니다.


웨인의 집에서 만난 알프레드는 아서의 엄마를 알고 있었고, 그는 그녀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아서는 토마스 웨인을 직접 만나고 그에게서 엄마에 대한 충격적인 비밀을 듣게 됩니다. 아서의 엄마는 망상장애 환자였으며 아서는 입양된 아이라는 것이었죠.

아서는 병원 기록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이 어린 시절 엄마와 엄마가 사귄 남자들에게 학대받으며 살았던 일들을 기억해냅니다.


아서는 이제 진정한 악당이 되어 어릿광대의 춤을 춥니다

음악과 함께 느릿하게 표현된 아서의 춤은 서글픔마저 느끼게 하는 처절함이 있었습니다.


조커는 잔인한 악당이었습니다. 자신의 엄마를 살해하고, 이웃집 미혼모를 살해하고, 자신의 직장 동료까지 살해한 무서운 악당이었습니다.

동정받을 가치도 없는 악한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자꾸 그가 구원받을 여지는 없었는지 미련을 갖게 됩니다.


아픈 그가 계속적으로 상담을 받고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면,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의 가혹한 학대가 없었다면 그의 삶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까? 하는.


깊이 있는 주제에 배우의 호연, 감독의 절제된 연출은 <조커>라는 훌륭한 영화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글을 마치는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이 불편함은 결국 마지막 숙제로 남겨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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