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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y 28. 2021

'놀면 뭐하니?'가 해낸 일

순위와 서열이 사라진 오디션이라니

'놀면 뭐하니'를 보다 눈물 흘리다


 '망할, 무슨 예능 프로가 이렇게 감동적이야.'


 토요일 저녁, 즐겨보는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보다 울어버렸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눈물샘이 터졌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넋을 놓고 바라봤을 뿐인데 얼굴에 두 줄이 그어졌다. 노래가 좋아 흘린 눈물은 아니었다. 노래가 좋았다면 날 울린 가수는 넘쳐났을 테다. 하지만 난 노래를 듣다 운 적이 없다. 그러니 노래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노래가 아닌 또 다른 이유가 나를 울린 것이다.


 이번 '놀면 뭐하지' 프로젝트는 남성 3인조 그룹인 'SG워너비'와 같은 남성 보컬 그룹을 결성하는 게 목적이었다.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유야~호(유재석)는 'MSG워너비'란 그룹을 만들고, 그룹의 멤버를 뽑기 위한 오디션을 펼쳤다. 선출 방식은 블라인드 테스트. 공정성을 위해서였다. 테스트를 통해 8명의 후보가 뽑혔고 8명 중 최종 3명의 멤버가 뽑히는 방식 같았다? 처음 의도는 그랬을 걸로 예측된다.


 그런데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한 8명의 후보가 문제였다. 8명의 후보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고 노래에 대한 열망 또한 대단했다. 영맨은 영맨대로 올드맨은 올드맨대로 누구 하나 떨치고 싶은 후보가 없었다. 여기서부터 제작진의 고민이 시작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후보들 중 선택받은 이가 있다면 그건 취향의 문제일 뿐 실력의 문제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 생각의 저변에는 떨어질 거라 예측된 인물들 조차 예상외로 노래를 잘 불렀고 개성 넘치는 목소리를 뽐냈기 때문이다.


 후보들의 진가는 2차 오디션에서 드러났다. 2차 오디션은 4명씩 2팀으로 나눠 지정곡을 정한 후 대결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노래가 정해지고 연습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맏형으로 불린 이들의 배려가 눈에 띄었다. 자신들은 그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듯 후배들을 지지하며 따르는 모습이 부지불식간에 드러났다. 경쟁에서 이겨야겠다는 의지보다 팀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지가 돋보였다고나 할까. 이런 선배들의 마음에 후배들의 존경심이 더해졌으니 그들의 모습이 남달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노래 대결이 시작되었을 때 가수와 비가수의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목소리가 존재했을 뿐이다. 튀어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은 각자의 목소리는 실타래가 감기듯 둥글둥글 말리어 모나지 않은 하나의 둥그런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둥글고 매끈하게 감긴 하모니의 끝을 잡아 형체를 알 수 없는 가는 줄로 풀어헤치는 건 잔인한 행위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경연이란 방식을 택했으니 누군가는 선택을 받고 누군가는 탈락의 아픔을 맛보리란 건 예상된 결과였다. 


 누구의 탈락도 원치 않는 상황에서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할까? 머리를 굴려가며 어울리는 조합을 짜맞추어봤다. 이미 노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울리는 조합이 문제였다. 보여주기 식이면 비주얼을 봐야 할 것이다. 신구의 조합도 어울릴 수 있다. 이것도 아니라면 각 분야에서 한 명씩 뽑는 방법도 있다. 가수에서 1명, 래퍼 중 1명, 연기자 1명. 


 나중에 발표된 결과는 내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걸 증명해 주는 신의 한 수였다.


 모든 경연이 끝나고 마지막인 듯싶은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 자리는 오디션의 결과가 발표될지도 모르는 자리였다. 아무리 마음을 비우고 그곳을 찾았다 한들 결과에 추호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떨어뜨린 사람마저도 마음 한편엔 털끝만큼의 기대는 남겼을 테니. 예상대로 그곳은 경연 결과가 발표되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 고민하지는 않았을까. 기뻐해도 슬퍼해도 어색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어떤 표정을 만들고 있었을까. 


 드디어 결과가 발표되었다.

순위와 서열이 사라진 오디션이라니

 이 부분이었다. 내 눈물의 근원지. 유야호의 결과 발표는 뜨거운 충격으로 온몸을 전율케 했다. 머릿속으로 어쭙잖게 조합을 짜 맞추던 나의 어리석음은 그의 말 한마디에 날아가버렸다. 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8명의 조합이 좋아 그 누구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 오디션의 편견을 깨서라도 모두를 선택하고 싶었던 마음. 물론 규칙을 깬 것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겠다고 했지만 책임 여부는 이미 그를 떠났다. 그의 선택은 시청자의 반응으로 이루어졌고, 시청자가 그의 선택을 지지하는데 누가 그를 추궁할 수 있단 말인가?


 유아호는 말했다. 자신은 순위나 서열에 중점을 두기보다 최고의 보컬들이 들려줄 음악의 조합을 선택한 것이라고. 훌륭한 팀을 2팀이나 얻은 건 행운이라고 말한 긍정적 사고는 '놀면 뭐하니'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물론 경연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가 아닌 예능 프로였기에 가능했던 선택이라 여길 수 있지만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그 선택 또한 특별했다.


 그동안 우리는 경쟁에서 이겨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에 길들여져 있었는지 모른다. 옆에 누가 있는지는 잊은 채 앞서 가는 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봤던 것이다. 그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묻지도 않은 채 그의 뒤만을 밟았다.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애벌레들처럼 앞만 보고 나아갔을 뿐 자유롭게 나는 나비는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 경쟁을 혐오하는 발언은 잊지 않았다. 줄 세우기만 하는 불공정한 사회라고. 순위와 서열은 신물이 난다고 분노하면서 자신의 위치는 가늠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좌절. 우리 모두는 지쳐 있었고, 자유롭고 싶었다. 경쟁에는 염증이 나 있었다. 그때 유야호가 말해주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괜찮다고.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목소리가 이 사회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고 있다고. 


 인디언 속담에 '내 뒤에서 걷지 마라, 난 그대를 이끌고 싶지 않다. 내 앞에서 걷지 마라, 난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옆에서 걸으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토요일에 본 '놀면 뭐하지'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순위나 서열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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