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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Aug 26. 2021

테스트로 자신의 독서 레벨이 정해진다면

동의하는가?

상담 후 독서를 생각하다

 며칠 전 학원으로 상당을 오시 분이 계셨다학원을 찾는 부모를 보면 대개 두세 부류로 나뉘는 걸 볼 수 있다. 아이가 독서를 하지 않아 학원에서라도 독서를 시키고 싶다는 부류와 독서는 잘하는데 글 쓰는 것을 싫어해서 글쓰기를 지도받고 싶다는 부류 혹은 역사나 국어처럼 교과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독서를 하고 싶다는 부류로 말이다. 수업을 할 때 그분들이 원하는 부분만을 콕 찝어 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교육함에 있어 참고 사항으로 삼는 부분이기에 주의 깊게 듣는 편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수업하지는 않는다. 독서가 부족하다 하여 학원에서 독서만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고, 글쓰기가 부족하다 하여 수업 내내 글쓰기만 시킬 수도 없지 않은가. 학원에는 학원만의 커리큘럼이 있고 교사 나름의 교육철학이 있으니 독서와 대화, 글쓰기는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병행해야 한다. 해서 독서가 필요한 아이에게 글쓰기 지도도 하고, 글쓰기가 필요한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것이다. 다양한 독후 활동은 글쓰기의 지루함을 탈피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고.


 상담을 통해 그분이 원하는 부분을 파악했다. 그분이 원하는 건 통계표였다. 무슨 말인고 하니 테스트를 통해 아이의 언어능력을 수치로 확인하고 싶으셨다는 뜻이다. 어휘력은 어느 수준이고, 이해력이나 사고력, 표현력, 비판력이 평균치와 비교하여 어느 정도 되는지를 알고 싶으셨던 거다. 학원에서 테스트라는 걸 실시하지만 아이들의 능력을 전적으로 테스트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테스트에 나타나지 않는 능력이 수업 중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테스트로 아이의 수준을 평가하고 점수로 확인하고 싶어 하셨다.


 학원에서 테스트를 실시해도 상담 자료로 사용할 뿐 점수는 알려주지 않는다 하니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다. 조금은 씁쓸했다. 굳이 독서로까지 아이의 수준을 비교하고 싶으셨던 걸까 안타까워서다. 영어나 수학이야 레벨테스트를 통해 수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수업을 할 수 있다지만 국어는 예외적인 상황이 도사리고 있어 그럴 수 없다. 어휘력이 별로인 아이가 표현력에서는 뛰어날 수 있고, 어휘력이 뛰어난 아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글로 표현하지 못한 아이가 있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수치는 그 아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의미다.


 2년 전 수업을 들었던 1학년들의 경우가 그랬다. 세 명의 아이가 수업을 들었는데 세 아이는 각자 성향이 달랐다. A는 차분한 성격에 학습면(받아쓰기, 읽기)에서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지만 자신보다 나은 오빠와의 비교로 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B는 맏이로 밝고 명랑한 성격에 인성이 실력이었지만 받아쓰기에서 맞춤법이 자꾸 틀리는 바람에 자신을 부족한 아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C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는지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을 드러냄에 주저함이 없었다.


 수업을 할 때 A는 또박또박하게 예쁜 글씨로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았지만, 발표에 인색하고 생각하는 시간에 비해 출력된 글이 빈약했다. 정형화된 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걸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B는 이해력이 좋았고 발표를 할 때도 주저함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표현력이 뛰어났다. 글씨는 꼬불꼬불 춤을 추고 맞춤법은 엉망이었지만 생각이 기발하고 재치가 넘쳤다. C는 모든 걸 속도로 승부했다. 먼저 대답하고 먼저 쓰려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는 것을 자랑삼았다. 생각을 조금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음에도 문제가 원하는 답만을 찾아내 글을 썼다.


 A는 노력하는 아이였고, B는 즐기는 아이였으며, C는 타고난 아이였다. A의 글씨로 B의 생각을 C의 속도로 해낸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각자 다른 능력을 지녔기에 각기 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A는 성실함으로 B의 거침없는 표현력을 배워갔고, B는 A의 차분함을 보며 지속적인 독서와 글쓰기로 맞춤법을 잡아갔다. C는 다양한 분야를 독서하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생각의 깊이를 더했다. 스스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 것이다.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차린 것이다. 아직은 어린 나이고 변화의 가능성이 무궁하기에 그들 중 누가 뛰어나고 누가 뒤쳐진다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의 능력을 수치로 말하는 순간 그들 사이에는 순서가 정해지고 아이들은 스스로의 수준을 결정짓고 만다. 독서에서 수치를 매기고 싶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다. 각자 자신이 가진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으로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다

독서는 시간이 많은 초등학생 때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대학생 시절까지 완성해야 하는 활동도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해야 하는 일상의 활동이다. 이런 활동을 어느 한 지점만을 떼어내어 평가할 수는 없다. 특히 이제 독서를 시작하는 초등학생 시절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른이 된 시점에서도 나의 독서 수준을 평가할 수 없다. 레벨을 정해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도 싫고 그 결과에 동의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아이의 독서 수준을 수치로 확인하려는 부모는 되지 말자. 그게 궁금하다면 자신의 독서 수준부터 확인하자.


 귀뚜라미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1년 365일 독서가 필요치 않은 계절이 따로 있겠냐마는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 하니 이 계절에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아이 앞에 앉아 보는 부모가 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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