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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Feb 05. 2022

동화 쓰는 법

이야기의 스텝을 제대로 밟기 위하여

 이야기의 스텝을 제대로 밟기 위하여

 동화작가가 들려주는 동화 쓰는 법이라 남달랐다. 동화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동화책을 읽는 것처럼 즐거웠으니 말이다. 억지로 시선을 잡아끌어 책장을 넘기게도 하지 않는다. 그저 눈 운동하듯 눈을 굴리면 책장은 스스로 넘어가 있다. 질척거리는 늪을 헤쳐가는 고단함이 아니라 찰랑거리는 물길을 헤엄치는 상쾌함이다. 작법서가 동화처럼 경쾌하니 이보다 더 좋은 수가 없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글은 마지막까지 궤를 같이 하며 무게의 중심을 제대로 밟는다. 


 글의 시작은 '스텝'이었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스텝, '슬로 퀵퀵 슬로'. 작가는 탱고를 배웠을 때의 경험을 얘기하며 동화의 스텝을 알려준다. 어찌 보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결과물과 영광의 꼭대기는 여리디 여린 두 단어 '슬로'와 '퀵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도 시작은 '슬로 퀵퀵 슬로'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했을 테다. 결국 능숙한 전문가란 땀을 뻘뻘 흘리며 기본기를 충실히 익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새빨간 드레스에 황금빛 슈즈를 신고 탱고를 춘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란 얘기다. 운동복에 어색한 발놀림을 하고선 '슬로 퀵퀵 슬로'를 무한 반복한 사람만이 능숙한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책 속에서 어슐러 k. 르 귄은 '기술이 예술을 가능하게 한다'며 삶 속에서 기술을 익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예술이란 기적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매혹적인 후아나나 카르멘을 꿈꿨기에 음악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수고를 마다않고 '슬로 퀵퀵 슬로'를 반복할 수 있었던 거다. 그녀가 '여인의 향기' 속 알 파치노의 파트너가 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의 발끝에 탱고의 스텝이 각인되었으리란 믿음에는 의심을 품지 않는다.


 글은 탱고의 스텝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이 책이 동화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화를 쓰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스텝을 잘 밟아야 한다. 그것이 너무도 막연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길처럼 보일지라도 한 발 한 발 걸음을 떼며 몸을 움직여야 한다. 위치를 바꾸며 이동해야 한다.


 작가는 스스로 동화를 별난 장르라고 표현했다. '어린이'라는 특정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그렇다. 동화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글이 아니라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수신의 장르라고도 했다. 작가의 표현보다 내용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하니까. 소설이 어려우면 독자는 자기 자신을 의심한단다. '이런 것도 이해하지 못하다니 난 정말 부족한 인간이구나'라는 식으로. 그러나 동화가 어려우면 독자는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작가를 의심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뭔 말인지 알아듣게 좀 해 봐봐봐'라고. 동화가 어린이에게 가닿지 못하면 동화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의심받게 된다. 동화가 독자인 어린이를 의식하며 써야 하는 장르라는 걸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글을 읽을 독자가 정해졌으면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 줄 매력적인 주인공과 주인공의 일상을 뒤흔들 도발적인 사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짠 플롯대로 사건을 배열하고 절정까지 끌고 가 독자를 울려야 한다. 감동은 절정의 자리에서 인물과 독자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렇다고 모든 결말을 잘 될 거라는 희망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거짓말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수와 실패와 상처가 반복되는 결말이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나와 너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문학의 일이니까.


 동화를 쓰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한다. 


 "강의를 듣는 것도 좋고, 습작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독서다.(중략) 글을 쓰겠다고, 그것도 자신이 쓴 글을 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평소에 독서 말고 뭘 할까? 책 말고 달리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핵심은 이야기다. 작가가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를 장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야기에 자신이 있으면 힘 있는 문장이 나오게 마련이다."


소설가 데니스 루헤인은 '운명의 날'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술이란 노동을 사랑할 때 일어나는 기적"이라고.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작가의 클로징이 멋지다.


"고맙게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동으로 밥을 벌고 있다. 나의 노동을 사랑한 덕분에 어느덧 기술도 익히게 되었다. 잘하면 이 기술로 예술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슬로 퀵퀵 슬로. 예술은 스텝에서 시작된다. 일단 조명도 드레스도 파트너도 없이 운동복 차림으로 슬로 퀵퀵 슬로. 이것은 스텝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이야기의 스텝을 제대로 밟도록 도와 줄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 마디만 기억하라. 슬로 퀵퀵 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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