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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an 05. 2022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 다듬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요. 저는 작가님의 책을 읽고 두려움이 커졌어요. 글쓰기가 두려워졌단 말이에요."


책을 읽고 저런 생각을 했더랬다. 부끄러운 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소심한 반항을 했던 거다. 그러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는 여지가 풍부한 말이 담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쓰레기와 같은 초고를 완성된 글로 다듬어 주는 주문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자신의 글이 다른 사람 앞에 예의를 갖춘 글이 되도록 도와주는 함의가 숨었다는 걸 알았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고치거나 다듬는 일을 게을리하여 글이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할 뻔했다. 계속 부끄러운 글 앞에서 탄식하며 어색한 글을 나만의 스타일로 여기며 버텼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부끄러운 글을 쓰고 어색한 문장 앞에서 쩔쩔매고 있지만 낯설고 울퉁불퉁한 글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기에 그나마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갖고 있다.


20년 넘게 교정, 교열 작업을 한 작가는 초창기에는 기초를 익힐 책이 없어 다른 사람의 문장을 스승 삼아 공부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수의 경지에 이르러 글을 읽으면 잘못된 글자들이 타자기 자판 튕기듯 툭툭 튀어나와 고개를 숙이고, 어색한 문장은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발을 맞춰 줄을 설 거 같은데 작가에게도 처음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책은 실용서의 딱딱함을 없애기 위해 한쪽에는 글을 쓸 때 주의해야 할 표현 목록을 적고, 다른 쪽에는 가상의 인물 함인주 씨와 메일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써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글이 술술 읽히도록 선택한 기민한 방법으로 작가의 노련미가 돋보인다. 작가는 이런 형식을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고 싶다고 애교를 부렸는데 탁월한 선택이 될 것만 같다.


작가는 남이 쓴 문장이든 자신이 쓴 문장이든 문장을 다듬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고 얘기한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처럼 맞고 틀리고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다고 한다. 해서 문장을 다듬는 일에 어떤 법칙이나 원칙도 제시하지 않는다. 굳이 기억해야 할 원칙 하나를 들라면 '문장은 누가 쓰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에 따라 쓴다'라고 말할 뿐이다. 쉬운 말 같지만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무거운 말이다. 누구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쓰고 위에서 아래로 배열을 하니까. 그렇다고 모든 글이 똑같아지지는 않는다. 누구의 글은 세상을 뒤집을 만한 글이 되고, 누구의 글은 등 뒤에 숨어 내밀기도 부끄러운 글이 된다. 그만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쓰는 일은 무게가 있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 된다.


잘 쓴 글은 없다. 잘 고친 글이 있을 뿐이다.

요즘은 책의 학습 효과인지 트라우마인지 글을 쓸 때면 문장이 문법에 맞게 쓰였는지를 살피고, 그 안에 적의를 보이는 것들은 없는지 걱정한다. 혹시라도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는 표현을 써 중언부언하고 있지는 않나 눈도 부릅뜬다. 글이 가자미눈이 되어 한쪽 방향으로만 달릴까 봐 검증하고 또 검증하느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늪에 빠지기도 한다. 느려진 글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지만 느림을 한심스럽게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삿된 글이 되지 않게 글을 바로 세우는 일임을 알기에.


누군가는 잘 쓴 글은 없고 잘 고친 글이 있다고 말한다. 잘 고친 글이 좋은 글이란 뜻이다. 이 책은 잘 고치게 도와준다. 비법서는 아니지만 언제든 손에 잡히도록, 눈에 밟히도록 곁에 두고 싶은 책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다. 글 쓰는 사람을 위한 유유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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