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른들께 자주 들었던 말 중에는 '밤에는 손톱 깎는 거 아니다'란 말이 있었다. 이 말이 어떤 연유에서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손톱을 먹은 쥐가 손톱 주인과 닮은 사람으로 변해 해를 가한다는 전래동화와 맞물려 오랜 시간 습관 하나를 만들었다. '밤에는 절대 손톱을 깎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그 말이 내 삶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사는 내내 도통 떨어질 줄 몰랐던 것이다.
가끔 이렇듯 무심하게 넘겨도 되는 일이 일생을 통과하는 내내 삶의 일부가 되어 지배자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가 있다. 듣지 않거나 읽지 않았으면 아무 탈 없이 행하고 지냈을 일인데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되면서 말이다. 몰라도 되는 걸 알아버려 병이 된 꼴이다. 올바른 이성과 과학적 판단으로 '그건 미신이야, 미신. 말도 안 되는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어'라고 머리를 흔들어대며 부인하지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두려움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그저 마음이나 편하자는 생각에 그 일을 다시 하게 되면 습관의 굴레에 질질 끌려다니게 된다. 해탈하지 못한 윤회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와 같은 족쇄 하나가 더 채워지는 듯한 경험을 했다. 어쩌면 그 일 또한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일을 행하는 순간마다 떠오르며 또 다른 습관을 완성할지 모른다.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허튼소리라는 걸 아는데도 그렇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딸이 독립하면서 우리 집의 쌀 소비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동안에는 쌀을 커다란 쌀통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렇게 큰 쌀통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얼마 전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작은 플라스틱 통으로 쌀통을 교체했다. 쌀통을 교체하니 쌀을 담는 일도 꺼내 쓰는 일도 수월하고 편해서 좋았다. 이 쌀통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쌀을 꺼내는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니께서 건넨 말 한 마디 때문이다.
어머니의 말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말을 듣는 순간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말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도 진지한 말투엔 그럴 수가 없었다. 말해 봤자 말싸움이나 할 것이고 어머니 속만 뒤집어 놓은 게 뻔하다는 생각에 체념한 까닭도 있었다.
어머니께서 문제를 제기한 건 계량컵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쌀통에 뒤집힌 채 푹 박혀 있는 계량컵이라는 게 맞다. 어머니께선
"아니 왜 컵을 저렇게 엎어놨냐? 만약에 니 시할머니가 저런 모습을 봤다면 놀라 자빠졌을 것이다. 어서 컵을 뒤집어 쌀을 가득 채워라. 그래야만 집안에 쌀이 떨어지지 않고 풍족하게 살 수 있어. 그릇을 엎어놓으면 재수 없으니 바르게 해서 늘 쌀을 채워 놓도록 해."
"네?"
그동안에는 계량컵이 바로 섰든, 뒤집어졌든, 옆으로 누워 잠을 자든 상관이 없었다. 쌀은 채워놓기보단 비워놓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풍족하지 않다거나 부족해지는 경우는 없었다. 넘치게 여유롭진 않았을지라도 불편할 정도의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턴 계량컵을 엎어놓으면 우리네 살림이 엎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만약 우리 집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생긴다면 그 책임을 나에게 묻는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억측도 했다. 어머니 말씀에 빨려 들고 있었다. 주문에 걸린 사람처럼 순순히 그 말에 순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라는 말로 부정하고 싶은 생각을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미신이면 어때
지금은 밤에 손톱을 깎지 않는 것처럼 그릇을 엎어 놓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릇에 쌀을 가득 채워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일을 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고 그리만 하면 말한 이와의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으니 그 일을 나. 는. 한다. 하지만 이런 말과 생각은 나에게서 끊어져야 것들이란 걸 안다. 내 자식들에게까지 가선 안 되는 말과 생각이다.
'미신이면 어때'라는 생각은 나까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나까지만. 하찮은 말 한마디로 자식들에게 짐을 지울 수 없다. 가볍게 던진 돌멩이가 돌덩어리가 되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다.
어쩌면 나의 이런 강력한 다짐은 항변일 수 있다. 받아들인 사람도 사실은 힘들 수 있다는. 그 쉬운 일이 굴레가 될 수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