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눈물

by 은빛구슬

당신의 이야기가 나의 글 속에 살아있는 걸 알게 되면 도발대발 얼굴을 붉히실 게 뻔하기에 시어머니의 일상은 되도록이면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작년에 있었던 진실 게임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이런 이유로 어머니와의 일은 좋은 경험으로 시작되었든,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든 내 글의 소재가 될 수 없음은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 집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는 어머니의 명을 따르는 일이고, 나쁜 뜻으로 쓴 글도 아닌데 집안일을 떠벌리는 입 싼 며느리가 되지 않는 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일을 소환하여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겪으신 일이 어머니의 일인 동시에 나의 일일 수 있고, 나이를 먹어가는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런 것이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는 서러운 일을 당하셨다. 폭염과 장마가 오락가락 정신을 못 차리다가 모처럼 진정을 해서 서늘해진 아침나절이었다. 어머니께선 날이 덥지 않으니 운동이라도 할 겸 동네나 한 바퀴 돌고 오신다며 집을 나서셨다. 동네를 산책하다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사 오는 것이 낙인 분이시라 걷기엔 다소 더운 날이었지만 조심해서 다녀오시라 말씀드리고 나의 일을 시작했다. 방을 청소하고 출근 준비를 하려 할 때 산책을 나가셨던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 다른 때보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힘이 들어 일찍 오셨나 보다 생각했다. 예상대로 손에는 먹을 것이 들려 있었다. 나는 시어머니의 음식 보따리를 받아 들며


"오늘은 좀 빨리 움직이셨나 봐요. 다른 때보다 일찍 오셨네요."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별 이상한 여자를 다 만나서. 생긴 것도 뭣같이 생겨가지고. 하는 말이라곤... 휴~"

흔들리는 목소리가 문장 마디마디를 끊어내고 있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예상하지 못한 어머니의 반응에 놀라 마당 벤치에 앉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와 물을 마시게 한 후 사정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께선 집이 주는 편안함에 나의 물음이 마중물이라도 된 듯 애써 누르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며 말씀을 이으셨다.


"감히 나를 뭘로 보고. 내가 지 나이 땐 훨훨 날아다녔어. 그런 나를 두고 어디서. 재수 없는 여편네 같으니라고."

흥분된 목소리가 가라앉질 않았다.


어머니 말씀의 전말은 이러했다. 그날도 어머니께선 평소처럼 자신이 걷던 길을 따라 걷고 계셨다 한다. 집 근처에 있는 은행 앞에 이르렀을 때 은행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어 도로 쪽으로 몸을 옮겼는데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이 있었는지 따르릉 거리며 기척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그걸 듣지 못한 어머니께서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가니 뒤에서 이를 지켜본 한 아주머니가 어머니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자기 몸 하나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한 노인네가 뭐하러 밖에는 나왔는지 몰라. 저럴 거면 가만히 집에나 있을 것이지."

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정작 자전거의 주인은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 주춤거리고 있는데 제삼자가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몸이 굳었고 심장이 떨려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한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아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뜨고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느냐고 따져 물었단다. 그랬더니 여자는 들을 척도 않고 휑하니 지나가버리더란 것이다. 참으로 상종 못할 위인을 만났다고 억울해하시는 시어머니의 눈에서는 쉼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어머니의 어깨를 안아 쓸어내리며 그런 사람의 말을 뭐하러 신경 쓰냐고 잊어버리라 말씀드렸지만 나의 위로가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미동도 없이 그늘진 마당만을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지나가버린 어머니의 젊음이 아른거려 안타깝기만 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스스로가 유한한 존재임을 잊고 사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자신은 늙지 않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살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니 유한한 존재로서 타인을 대하는 방법을 잊고 사는 경우가 생기는 거고.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세상 속 나의 부재를 생각하게 될 때라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해 괴로워한다.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없어지는 날도 있겠구나, 하는 존재의 부재가 타인을 이해하는 순간으로 작용하면서 말이다.


가끔 길을 걷다 유모차처럼 생긴 보조 의자를 밀고 다니시는 할머니들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분들을 바라보곤 했다. 정작 그분들이 원하는지 원치 않은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그런 동정의 눈빛마저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분들은 그저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니 그 길에 어떤 부담감도 딸려 보내서는 안 된다. 쓸데없이 동정의 눈빛을 안겨드려 세상에 빚진 기분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선을 거두고 무심히 지나가면 그뿐이다.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행동을 취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나이 들어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할 때 누군가 나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난 거절한다. 지나친 관심도 무례한 태도도 노인에 대한 배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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