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딸의 엄마다. 그리고 엄마의 딸이다. 딸에게 엄마인 내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나에게 엄마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아픈 이름이다.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애써 외면하는 이름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래잖아. 연락 없으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
가끔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이 힘들었다 말할 때 책으로 엮으면 소설책 몇십 권은 될 거란 말을 한다. 나는 우리 엄마의 인생이 바로 소설책 몇십 권의 삶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의 인생은 절대 글로 쓰여선 안 된다고 여긴다. 그 소설책 몇십 권을 쓰는 동안 기억해내야 할 많은 일들은 결코 추억으로 꺼내놓기엔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니.
내가 결혼할 때 시어머니께선 아빠 없이 우리 삼 남매를 키워내신 엄마가 대단하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삶이 어땠을지 짐작이나 하셨을까? 시어머니는 엄마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셨던 분이다. 그런 분도 입버릇처럼 본인의 삶이 참 힘들었다는 말씀을 하신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신 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어머니의 고단한 삶은 든든한 방패를 몇 개씩 챙겨두고 세상과 맞서 싸운 데서 오는 것이었고, 울 엄마의 싸움은 맨 몸으로 세상과 맞서 싸운 데서 오는 고단함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펀치의 강도가 결코 같을 수 없는 게임이었단 뜻이다.
세상과의 한판 싸움 끝에 받아야 했던 그분들의 평가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싸움에 대한 대가로 집안에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엄마는 그 누구에게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엄마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냐'라는 자식들의 냉담한 태도에 직면했다.
그때는 철이 없었다. 지금은 그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고도 남지만 그땐 몰랐다. 그땐 부족함만을 보고 그 부족함으로 세상을 원망하기 바빴으니까. 그게 나라서 더 속상하다.
가끔 남편이 "넌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라고 말할 때면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도 아빠에게 저런 말을 수없이 들었을 사람이기에.
엄마는 세상 앞에 당당한 사람이 아니었다. 늘 남편 뒤에 숨어 사는 나약하고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삶을 살았기에 아빠의 부재는 엄마를 더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때 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였어."
엄마가 본인을 자책하면서 했던 말이다. '엄마가 강했더라면 너희에게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런 엄마였기에 우리 삼 남매를 대학에 보내는 게 더 힘들었을 것이다.
미안하게 그런 말 하지 마요
결혼 후 엄마에게 자주 연락을 못했다.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였다. 하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혹시라도 엄마에게 아프다는 말이라도 들을까 봐서였다. 엄마는 날 29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엄마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내가 엄마를 감당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참으로 비겁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남동생에게 엄마를 떠밀었는지 모른다. 동생이 가까이 살아서. 동생은 아들이니까. 엄마가 동생의 아이들을 봐주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 핑곗거리를 찾아 엄마를 외면했다.
그런 무의식의 발현인지 시누이가 어머니께 매일 하는 전화를 나는 어쩌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요즘처럼 나라가 하 수상한 날에나 했다.
"엄마, 요즘 코로나의 전염이 심각하니 ㅇㅈ 집에 갈 때 마스크 꼭 쓰고 다녀."
"아이고, 우리 딸이 엄마 걱정돼서 전화했어? 고맙다. 이렇게 엄마 걱정해주는 효녀 딸이 있어 엄마 기분이 좋네. 딸도 건강 잘 챙겨. 참, 이번에 시골에 사는 경애 고모가 쌀을 보내 줬는데 한 가마니 가지고 갈래?"
"우리 집도 쌀 쌓아 놓고 살아. 걱정하지 마. ㅇㅈ네나 좀 주던가"
"ㅇㅈ네는 밥도 잘 안 해 먹더라. 사 먹는 게 돈이 더 적게 든다고 반찬도 다 사 먹는데"
"괜히 ㅇㅈ집에 가서 밥 해 먹어라, 반찬 해 먹으라 이런 말 하지 마.애들 싫어하니까"
"걱정 마. ㅇㅈ집에선 니 조카들 밥 먹이고 설거지도 안 하고 온다. ㅈㅅ이 한테 더 깨끗이 하라고"
엄마는 어쩌다 이렇게 전화하는 딸에게도 효녀라고 말한다. 시골 사는 고모(사실은 먼 친척 되시는 분으로 우리 집 농사를 지어주고 계신다)가 자기 자식들 자랑을 한참 동안 늘어놓으셨을 텐데 그런 전화를 받고서도 말이다.
난 효녀가 아니다. 엄마가 무얼 먹고 사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식사 때면 시어머니 반찬을 걱정하는데 그게 무슨 얼어 죽을 놈의 효녀란 말인가?
엄마가 혼자 사는 건 당연한 것이고, 어머니는 혼자 사실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절대 효녀란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딸자식 키워놔 봐야 소용없단 말을 들어 마땅한 사람이다.
이런 내가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해서 효녀라는 말을 들었다.
'엄마, 날 효녀라고 부르지 마. 그냥 전화도 않는 못된 딸이라 불러줘. 엄마의 효녀라는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해.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연락도 잘하지 않는 딸이 무슨 효녀야?'
이제라도 안부 전화 하나에 고맙다고, 효녀라고 말해주는 엄마에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남아있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