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조선여인 Sep 19. 2022

며느리와 설거지의 관계

없다

추석날의 설거지

"자기는 식탁이나 정리해.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아니요. 제가 설거지할게요. 형님이 식탁을 정리하세요."

"뭔 소리야. 정리는 집주인이 해야지. 내가 어디에 뭘 넣어야 할지 어떻게 알겠어. 자기가 정리해"


수저를 놓기 무섭게 자신의 수저와 밥그릇을 챙겨 들고 싱크대 앞으로 황급히 가는 사람은 나의 큰 형님이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기라도 하듯 형님은 늘 그렇게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발걸음을 옮기신다. 형님의 말씀대로 음식이나 그릇은 주인이 알아서 정리를 하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주인이 아닌 사람이 뒷정리를 못할 이유는 없다. 꼬막처럼 껍데기가 있거나 덜어 먹어서 젓가락이 닿지 않은 음식은 챙겨두면 되고, 젓가락이 닿아 먹을 수 없는 음식은 모아서 버리면 끝이다. 음식을 먹은 자리를 뒷정리하는 것 따위는 문제라 할 것도 없다. 문제라면 싱크대 옆에 쉴 새 없이 쌓이는 그릇들이 문제인 것이지.


명절날 가장 골치 아픈 일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예외 없이 설거지를 선택할 것이다. 명절의 설거지에서 깔끔하게 씻긴 그릇을 바라보는 개운함 따위는 없다. 그때의 일이라는 건 그저 무상무념으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그릇을 세찬 물줄기로 헹궈내며 '나는 그릇 씻는 기계다'란 생각으로 그릇을 씻어내면 그만이다. 그릇을 씻는 단순한 행동이 중노동이 되는 기막힌 경험을 하면서 말이다. 형제가 많은 집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이 없다. 그것이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라면 모를까 어디 우리네 식사가 하루에 한 끼로 끝나는 일이었던가. 거기다 명절이란 놈은 제 끼니를 모르니 그것 또한 개탄할 노릇인 것을. 이러니 음식을 먹고 치우는 일이 장만하는 일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고통을 우리 집에선 늘 큰 형님이 자청하신다. 그런 행동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나에 대한 배려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씻고 또 씻어도 줄지 않는 그릇들을 지켜보는 내 마음 또한 편치가 않다. 거기다 환갑에 가까워지는 형님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번 추석에는 그런 안쓰러움을 위로한답시고 말 한마디를 건넸다가 속으로 움찔했다. 내 생각의 방자함에 스스로 놀란 것이다. 


내가 형님에게 건넨 말이 무엇이었는고 하니,

"형님은 며느리를 봐야 할 나이에 여전히 설거지를 하고 있네요."였다.


며느리를 보는 것과 설거지가 무슨 관계가 있어 저런 말을 했던 걸까. 왜 며느리를 보면 형님이 더 이상 설거지를 안 해도 된다 생각했을까?


그런 말을 한 내 의식 속에는 명절에 설거지는 며느리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었던 게 분명하다. 형님이 설거지에서 벗어나는 일은 며느리가 들어와 그 일을 대신했을 때라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명절에 며느리들이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다시 며느리에게 대물림하려 하다니 참으로 불경스러운 생각이었다. 차라리 설거지하는 것이 힘드니 제사 음식만 간단히 장만하고 식사는 주문을 해서 먹는다든지,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가며 설거지를 하는 게 어떠냐고 묻는 게 옳았다. 


생각해 보니 나란 사람도 실수를 하고 깨닫는 어리석은 에피메테우스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무심결에 한 말에 스스로 놀랐다는 데 있긴 하지만. 내가 싫은 건 남도 싫고 며느리도 싫다. 여자가 여자에게 건네려는 게 고작... 한심스럽다. 먼 훗날 나의 명절에서 며느리 혼자 설거지를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것을 믿는다. 이것이 뒤늦게 깨달은 자의 민망한 다짐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술 같은 시어머니의 말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