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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Nov 04. 2019

교육의 이름으로도 폭력은 거부합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은 맞습니다.

우리의 교육에 폭력이 정당화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교사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였고, 우리는 그것이 교육을 위한 일인지 자신의 감정 해소를 위한 분출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그저 교육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나 분명했던 건 교육이 아닌 감정의 분출은 표시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통 사소한, 너무도 사소한 일에서 발생했으며,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훅 치고 들어와 아픔을 안기기도 전에 수치심 먼저 던져주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체벌은 차라리 교육적이었습니. 적어도 체벌에선 잘못의 이유가 밝혀졌고 그 후에 폭력이 가해졌으니까요.


어린 시절 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냥 소리 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조용히 학교에서 흔들리다 집으로 날아가는, 발소리조차 소심했던 그런 아이. 그래서 폭력에 대한 기억이랄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에게도 잊히지 않는 사건이 둘 있으니, 하나는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목격담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나뭇잎처럼 발걸음도 가볍던  수업이 끝난 후 친구와 장난을 치며 복도에서 뛰다 선생님께 걸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머피의 법칙이었습니다. 얌전한 제가 어쩌다 뛰었는데 그때 딱 걸렸으니 말입니다. 

선생님 앞에 와 친구. 우리는 잘못을 빌기도 전에 선생님의 슬리퍼에 머리를 가격 당하는 폭력을 당했습니다. 그 순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던 수치심과 모멸감.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부끄러움으로 눈물이 쏟아냈습다.

우리는 그때 뒷짐 지고,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좌측통행하는 교칙에 충실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느닷없는 슬리퍼의 공격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면 부모님의 항의와 우리들의 반항이 뒤따랐을 테지만 당시는 폭력도 교육이 되던 시절이라 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어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만을 가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교육이란 름으로 행해졌던 그 날의 폭력은 지금까지 교육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이리 기억되고 있습니다.


 다른 폭력은 저의 목격담입니다.

중학교 수학 시간 때의 일입니다.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께서 컴퍼스를 발음하셨는데 그 발음이 좀 이상했습니다. 발음이 어색하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에  아이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냥 넘어갔지요.

그런데 그때 한 아이가 웃음을 뿜었습니다.

순간 선생님은 얼굴 표정이 변하셨고, 몸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그 아이에게로 다가가 사정없이 뺨을 갈겼습니다.

얼어버린 교실.

선생님은 그것만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으셨는지 책상을 밀치더니 바로 그 아이의 허리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여학생의 웃음소리 하나가 선생님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선생님은 그리 표현하셨던 겁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반 아이들은 공포에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수업도 잊은 채 그 아이의 행동을 비난하기 바빴고, 버릇없음과 예의 없음만을 수없이 거론하였을 뿐 자신의 행동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행동은 예의 바르지 못한 아이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녔음은 확실합니다.


이렇게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발현된 폭력은 교육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라는 이름으로 행한 폭력은 교육이 될 수 있었을까요?

딸아이와 대화 도중 딸로부터 아빠는 폭력적이다란 말을 들었습니다. 딸아이는 매 맞는 것을 두려워하여 어렸을 때부터 매를 맞지 못했습니다. 바닥 하나도 맞질 못해 아빠의 화를 돋게 해서 동생이 흑기사가 되어 누나 대신에 매를 더 맞았던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딸이 아빠가 매를 들었던 것만으로도 아빠가 폭력적이란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잊지 못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딸의 기억처럼 폭력은 절대 교육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요.


꽃으로도 때리지 말하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때리는 사람에겐 폭력이 교육일지 몰라도 맞는 사람에겐 체벌도 교육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고통의 기억으로만 남았을 뿐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교육을 가장한 폭력은 당당하게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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