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과 홍어찜이 식탁을 엎을 음식이라고?
나에게는 고품격의 요리입니다.
음식에도 품격이 있다면 이 음식은 어떤 품격을 지녔을까?
이 음식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논할 가치 조차 없는 음식이다'란 격한 반응을 보일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말만 들어도 먹고 싶어 머릿속에서 빙빙 돈다'는 반응을 보이며 군침을 흘릴 것이다.
우리 집에선 즐겨 먹지만, 일반 가정집에선 결코 즐겨선 안 될 것 같은 음식.
물론 우리 집에서도 이 음식에 대해서는 호불호는 갈린다. 어머니에겐 손수 재료를 사러 가게 만들 만큼 매력적인 음식이지만, 나와 남편에겐 동참 정도에서 어머니 쪽으로 서서히 기울게 만드는 음식이며, 딸과 아들 특히 아들에겐
"장모님이 차려주신다 해도 식탁을 엎어버리고 싶은 음식이야"라는 말을 듣는 억울한 음식이다.
참고로 내 아들은 인성 하나는 끝내주고, 남을 배려하는 능력 또한 탁월하며, 남이 싫어할 소리를 잘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음식이 얼마나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는지 짐작할 것이다.
어려운 장모님께서 차려주신 상까지 엎어버리게 할 음식, 우리 아들의 혐오를 부르는 음식, 글을 읽어가며 대강은 짐작하셨을 그 음식.
바로 청국장찌개와 홍어찜이다.
두 음식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극과 극의 장점과 단점을 지녔다는 것이 그것이다.
장점은 한번 맛을 들이면 시시때때로 생각나는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감히 접근 조차 꺼려지는 꼬리꼬리 한 냄새가 있다는 점이다.
음식 이름을 밝히고 글을 쓰는 이 순간, 내 글에서도 꼬리꼬리 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그 냄새를 상상하며 글을 읽다 내 글에서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까지 된다.
일요일 아침, 청국장을 먹고 난 후 점심시간이 되어갈 무렵 아주버님이 오셨다. 아주버님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무슨 죄라도 지은 것 마냥 서로 한 마디씩 거들며 냄새의 정체를 밝혔다.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미안한 마음까지 느끼며 냄새의 정체를 해명한 것이다.
아주버님도 청국장은 드신다. 하지만 아주버님 역시 그 맛을 즐길 뿐 냄새는 즐기지 않을 것이다. 이 음식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맛과 냄새에서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음식은 보통 좋은 냄새를 풍기면서 그 맛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 음식은 맛으론 사람들을 사로잡지만 그 냄새로 사람들을 쫓아버리는 고약한 심보를 지녔다. 먹을 땐 모르지만 먹고 난 후 느껴지는 냄새. 그래서 우리는 아주버님께 죄스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맛은 보이지 않고 냄새만을 풍겼으니...
우리 집에서 먹는 음식 중 맛으로 사람을 사로잡지만 냄새로 사람을 쫓는 또 다른 음식이 바로 홍어찜이다.
아니다!
홍어찜은 맛에서 조차 사람을 쫓고 있는 음식인 게 분명하다. 홍어찜을 먹을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 심지어 남편조차 홍어찜은 즐기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홍어찜은 맛과 냄새 둘 다에서 외면받는 불쌍한 음식이다. 하지만 나는 청국장보다 홍어찜을 더 좋아한다. 코를 톡 쏘는 그 알싸한 맛이 좋다.
내가 처음 접한 홍어 요리는 홍어무침이었다. 홍어무침은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는 홍어를 막걸리에 뽀득뽀득하게 씻으셨다. 그래야 뼈도 연해지고 소독도 된다면서. 그런 다음 잘 빤(어머니께선 그렇게 표현하셨다) 홍어에 미나리와 파, 양파를 넣고 초장을 부어 새콤달콤한 홍어무침을 만드셨다. 처음에 나는 먹으라는 홍어는 먹지 않고 미나리만 건져 먹었다. 그러다 입에 댄 홍어는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기 않았다. 막걸리와 딱인 홍어무침.
그다음으로 접한 홍어 요리가 홍어찜이다. 홍어찜은 어머니께서 나이가 드셔서 홍어 뼈를 잘 씹지 못하시면서 먹기 시작한 요리이다. 나는 이 홍어찜이 참 좋다. 맛도 맛이지만 우선 요리 방법이 간단해서 좋다. 깨끗이 닦아낸(어머니는 홍어의 겉 부분만을 칼로 긁어내고 키친 타올로 닦으셨다) 홍어를 찜기에 올리고, 그 위에 잘 씻어 다듬은 부추만 넓게 펴서 듬뿍 올려주면 된다. 부추에 홍어를 싸서 초장에 찍어 먹는 맛은 끝내준다. 나는 홍어찜을 먹을 때마다 홍어찜을 잘 먹지 않는 식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그때만큼은 양심의 가책 없이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맘껏 먹을 수 있으니... 홍어찜에는 막걸리보다 소주가 잘 어울린다.
아들은 장모님이 차려 줘도 식탁을 엎어버리고 싶을 만큼 고약한 음식이라고 폄하하지만 난 청국장과 홍어찜에도 품격이 있다고 본다. 그 맛이 바로 품격이다. 그것도 고품격.
비록 청국장 하면 시골 할머니가 떠오르고, 홍어 찜하면 술 취한 아저씨가 떠오른다고 할지라도 난 청국장과 홍어찜이 고품격을 가진 요리라 자부한다. 단, 근거는 없다.
지난주에는 청국장으로 집안을 점령했으니, 이번 주에는 홍어찜으로 집안을 점령해 보면 어떨까?
아들아, 미안하다.
이제는 홍어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