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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y 07. 2020

간편식도 슬로푸드로 만드는 재주

슬로푸드에 도전.

간단하게 먹자


"오늘 날씨도 더운데 간단하게 먹고 끝냅시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가 식욕까지 저하시켰을까? 만사가 귀찮았다. 간단하게 먹고 쉬고 싶었다. 나의 말에 남편이 호응해 주었고, 어머니께선 뭐든 좋다고 하셨기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한 끼 식사로 정했다.


간편식의 최고는 라면이다. 하지만 라면을 먹기엔 너무 더운 날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쫄면이 보인다. 추운 날이면 모를까 더운 날에는 역시 쫄면이지. 면을 삶아, 씻고, 비비는 시간까지 포함 15분이면 충분하다. 이 정도면 간편식으로 자격은 갖춘 셈이다.


자, 그럼 오늘의 메뉴 시작해 볼까나.


면을 삶으려고 포장지의 겉면을 읽다 한 곳에 눈길이 꽂혔다. 기호에 따라 달걀, 오이, 콩나물 등을 첨가해서 먹으면 더 맛있다.


'그렇지. 이왕 먹을 거면 쫄면 전문점 흉내 정도는 내줘야지' 싶어 또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라! 재료가 다 있네. 게다가 매운 요리에 어울린다는 튀김을 할 수 있는 군만두까지 있어.


모든 재료를 꺼내놓고 요리를 시작했다. 면은 가장 나중에 삶기로 하고 부재료 먼저 준비했다.


제일 먼저 달걀을 냄비에 넣고 소금과 식초를 한 티 정도 넣어 끓여 놓았다.

다음 콩나물에 물을 넣어 끓이다 김이 오르자 건져내어 찬물에 담갔다.

오이는 씻어서 껍질을 벗겨 채 썰어 두었다.


이쯤 준비하고 보니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 이건 아닌데. 간단하게 먹자고 시작한 일에 속절없이 흘러가는 이 시간은 뭥미? 게다가 면은 아직 준비도 안 했는데, 짜증이 나네.'


만두는 봉지에 기름을 한 T 넣고 잘 흔들어 에어 프라이기에 넣었다. 만두는 기름에 튀겨 동그란 공기 방울이 송송 뚫려줘야 맛있는데 오늘은 간편식이니 간편하게 그냥 에어프라이기행이다.


만두를 넣고 돌아서는데 내 속처럼 부글부글 끓어 오른 달걀이 자기를 그만 좀 끓이라고 재촉한다. 달걀 역시 뜨거운 물은 버리고 찬물에 담가 두었다. 이제 면만 삶으면 된다.


15분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한 시간이 30분을 훌쩍 넘었다. 면을 삶아 씻고, 달걀 껍데기를 벗기고, 만두를 꺼내 놓으면 10분 이상 소요될 테니 간편식 요리에만 총 1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헐이고, 대박이다. 이게 무슨 간편식이야?

재료 준비 시간이 더 길었던 쫄면

식탁을 차리고 남편을 부르니

"오늘 간단하게 먹자고 하지 않았어? 간편식을 한다더니 슬로푸드를 한 거야?" 한다.


그렇지. 나에겐 간편식도 슬로푸드로 바꾸는 재주가 있지.


맛에서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쫄면은 시간상으로만 슬로푸드였다. 그건 영혼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는 닭고기 수프와 같은 슬로푸드는 아니었단 말이다. 단지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 그건 그냥 패스트푸드였다.

진정한 슬로푸드


그런데 남편의 말을 꼬지 않고 해석해 보니 간편식도 정성을 한 줌 정도 첨가해 주면 영혼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슬로푸드로 변신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빨리 만들어서 빨리 먹어 치우려는, 음식에 대한 애정 따위는 1도 없었던 나는 간편식 하나를 느리게 만들다 슬로푸드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고, 힘이 들겠지만 영혼을 살짝만이라도 흔들어 줄 수 있는 슬로푸드를 만들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진정한 슬로푸드에 도전하게 되었다.


다음 메뉴는 콩나물밥, 며칠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요리다.


그러나

그 요리는 곧 영혼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요리로 탄생할 준비를 하고 있다.

콩나물을 시루에서 길러 콩나물밥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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