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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un 08. 2020

아궁이에서 끓여낸 할머니의 콩나물국.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맛.

할머니 집 아궁이가 만들어낸 음식.


콩나물시루가 오줌을 싼다. 푸른 바람에 좋아라 춤을 추는 개울물의 청아한 소리를 하고, 쫄~쫄~쫄~쫄 시원스럽게 오줌을 싼다. 눈을 감은 채 듣는 그 소리는 맑고 경쾌한 음악소리다. 아직은 이불속에서 나갈 생각이 없지만 머지않아 할머니께서 나를 깨우리라는 건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70년대 어느 시골 마을, 할머니의 방에서 들었던 배불뚝이 콩나물시루가 냈던 소리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추억의 소리다.


그 시절 할머니께선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아직 문풍지의 색이 드러나지도 않은 어둠의 시간인데 말이다. 시루의 쫄쫄쫄 소리는 어둠을 깨뜨리는 소리였고, 새벽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나의 머리가 깨어났고, 몸은 아침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러나 눈이 반응을 하지 않았다. 불이 켜지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의 눈은 적응을 하지 못해 눈꺼풀 밑에서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그럴 때면 할머니께선 눈도 뜨지 못한 나를 당신 앞에 앉히시고는 머리를 빗기기 시작하셨다.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동안 나의 머리는 빗겨졌고 어찌어찌 정신도 차려졌다. 할머니 손에 탄생한 나의 머리는 사극에나 등장할 법한 촌스런 댕기머리였다. 그 댕기머리는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으니 참으로 오랜 시간 촌스러운 아이로 지냈던 거 같다.


나의 머리를 빗겨주신 후 할머니께선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을 한 움큼 뽑아 부엌으로 가셨다. 그러면 나도 쪼르르 할머니를 따랐다. 아침 준비는 할머니께서 담당하셨던 걸로 안다. 큰엄마께서도 부엌에 나오셨지만 식사 당번은 늘 할머니셨다. 큰엄마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 피우는 일을 하셨다. 나의 자리는 큰엄마의 옆자리였다. 내가 나오면 큰엄마는 나무를 엮어 만든 방석을 내어주셨다. 그러고는 뾰족뾰족한 소나무 잎을 긁어모아 불길을 살리고는 가는 나뭇가지, 굵은 나뭇가지를 차례로 넣어 불꽃을 피우셨다.


할머니의 부엌에는 아궁이가 두 개 있었는데 큰 아궁이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올려졌고, 작은 아궁이에는 작은 가마솥이 올려졌다. 큰 가마솥은 밥을 담당했고, 작은 가마솥은 국을 담당했다. 아궁이의 쓰임은 요긴했다. 불을 지펴 밥과 국을 끓여 내는 걸로 임무를 다 했다 생각했는데 방을 따뜻하게 데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궁이에서 긁어낸 숯으로는 생선을 굽고 김을 구울 수도 있었다. 우리의 생활에서 식과 주를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만능의 장치였던 것이다.


할머니는 직접 키운 콩나물에 김장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콩나물국을 자주 끓이셨다. 어린아이의 입맛에도 할머니의 콩나물국은 참 맛이 있었다. 그 시절엔 먹을 것이 없어 그런 음식이 다 맛있었다 말할 수도 있지만 지금도 땅에 묻어 보관한 김치가 김치 냉장고에 보관한 김치보다 더 맛있는 걸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할머니의 아궁이가 만들어낸 맛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때 먹은 콩나물국의 기억이 혀 끝 어딘가에 남은 탓인지 난 지금도 콩나물국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내가 기른 콩나물


비록 할머니의 솜씨에는 못 미치겠지만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마음에 시루를 사서 콩나물을 키워 보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콩나물은 물만 주면 거저 자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키운 콩나물은 물을 받아먹고도 살을 찌우지 못했다. 허약체질이었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다이어트를 해버린 것이다.

내가 키운 콩나물. 잔뿌리가 많이 자랐다.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콩나물을 손질하여 콩나물국을 끓였다. 콩나물 머리가 고소했다. 그래도 할머니의 부엌 아궁이에서 끓여낸 콩나물국의 맛은 아니다. 콩나물을 직접 키워 콩나물국을 끓이면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먹었던 콩나물국의 맛을 흉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실패했다. 그건 단순히 재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콩나물국은 직접 키운 콩나물만으로 완성되는 맛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할머니와 할머니 부엌의 아궁이가 포함되어야 했다. 추운 겨울 나의 얼굴을 뜨겁게 달구어주고, 밝게 웃어주었던 할머니와 아궁이가.


시루에서 직접 키워낸 콩나물과 아궁이 그리고 할머니 손맛은 내가 기억하는 콩나물국의 필수조건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도 아궁이도 없는 지금, 콩나물 하나만으로 그 맛을 재현하기는 역부족이다.


정말로 할머니의 콩나물국은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맛이 되고 만 것이다.

할머니 콩나물국 맛을 흉내 내지 못한 나의 콩나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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