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렇게 된다.
그 시각 정우는 산본예술회관을 지나고 있었다. 그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던 수리산의 새벽이 무너진 9단지 사이로 다가왔다.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발검음이 빨라지더니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철현은 대량 살상이 영 내키지 않았다. 바보 같은 놈들이 민간인 곁에 진을 친 꼴을 보니 더욱 그랬다.
“철새, 철새, 알 낳을 수 있나?”
“정상에 둘, 언덕에 하나.”
“가능하다. 정상에 둘, 언덕에 하나.”
“실시.”
폭파조 몇이 군 지휘부의 감시를 뚫고, 폭탄을 설치했다. 정우의 아이들이 잠든 곳에서 불과 1km 밖이다.
“우리도 다칠 수 있으니 힘 조절, 혼란을 틈타 급히 이동한다.”
철현은 동이 트기 전에 반월저수지까지 이동해야 했다. 부대가 포격에 노출되면 전멸이었다. 아군이 그들의 무전을 감지한 것은 그때였다.
‘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군 지휘부가 날아갔다. 초막골 생태공원과 마주한 군포소방서에 비상벨이 울렸다. 소방관들은 소방차를 뒤로 하고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제법 멀찍이 떨어져 있던 임시 탄약 보관소에도 폭발음이 들렸다.
“펑! 펑.”
연쇄 폭발이었다.
그때 정우는 한양아파트 앞을 지나고 있었다. 초막골 생태공원은 대낮처럼 밝았다. 정우는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초막골 생태공원 캠핑장 안쪽에 민간인 임시 거주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폭발음과 동시에 지혜는 아이들을 깨웠다.
중앙도서관 전투에서 지혜와 독거미 팀원들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파치 헬기의 지원이 없었다면, 한양 상가에 도착하기도 전에 저승에 먼저 갈 뻔했다. 살아남은 그들은 무기를 모두 반납하고, 머쓱한 표정으로 지휘부를 나섰다.
“아, 아줌마들, 아니 선배님들. 또 이러시면, 정말 잡혀갑니다. 큰일 나요.”
“두두두두두두.”
마침 임시 헬기장에 착륙한 아파치 조종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여성이었다. 그는 지혜에게 다가와 ‘척’ 하니 거수 경례했다.
“이 분이 우리 구해줬구나.” “고마워요, 언니.”
지혜도 고개를 숙이며 멋쩍게 거수 경례했다.
우리 군은 철현의 부대를 곱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수리산으로 먼저 올라간 철현의 부대를 기다리는 건 탈출의 희망 대신 집중 포격이었다. 지휘부가 직접 공격받으리라 예상치 못했던 아군이지만, 정밀 포격으로 모든 걸 만회할 심산이었다.
‘빨리빨리, 능선만 넘어가면 된다. 능선만.’
철현은 수리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마치 우리 특수부대처럼 걱정하는 모습으로 서 있던 철현은 총구를 돌연 살아남은 지휘부 병력 쪽으로 돌렸다.
‘다다다 다다, 다다다 다다.’
그의 곁에 남은 다섯 명의 북 특수부대원들도 마지막 총탄까지 쏟아내며 아군 지휘부를 타격했다. 그리고 하나둘, 아군의 저격에 쓰러져갔다. 철현은 죽어가는 후배들을 뒤로하고 민간인 대피소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군 지휘부 정문에 도착한 정우는 민간인 대피소의 위치를 물었다.
“예, 소각장 아래요? 감사합니다.”
20km 밖에서 수리산 쪽으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미 상처 입은 산이 또 한 번 무너지고 있었다. 약수터도, 체력단련장도, 황톳길도, 모든 게 사라졌다.
정우는 민간인 대피소 앞에 도착했다. 포격 소리에 아내와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묻혔다. 그런데 민간인 대피소 앞에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많은 군인이 그를 겨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