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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서재 Feb 09. 2021

나는야 활동가

영유아인권법 제정하라! 제정하라!

**작년 12월 영유아인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발언한 내용**


안녕하세요. 저는 수도권에서 4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양육자입니다.

제 아이는 내년에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전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할 기관이기에 지난달 총 세곳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방문해 입학 상담을 받았습니다. 방문한 기관 모두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셨는데요 세 곳 모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유아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이 올해부터 놀이중심, 유아중심으로 운영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기관이 영어, 한글, 수학, 체육, 음악, 한자, 드론, 코딩 등 특성화 프로그램을 누리과정 정규 시간에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정규시간에 운영되다보니 당연히 아동과 양육자에게 선택권이 없었고, 전원 필수참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정규교육시간에 이뤄지는 특별활동이 교육청 지침에 어긋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제기로 인해 행여나 내 아이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신청하지 않겠다고 하면 내 아이 혼자 그 시간에 어딘가 방치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기관 스케쥴을 보면서, 유아교육기관, 유아보육기관에서 마저 마음껏 놀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도 이제 시작이구나, 이렇게 학습 환경 속으로 들어가는구나 절망도 했습니다. 이를 거부하고 대안교육이나 공동육아와 같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가정이 경제적 이유 또 맞벌이 가정으로서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최소한 유치원, 어린이집에서라도 마음껏 놀며 생애 다시 오지 않을 영유아기를 행복한 시간을 채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유아와 아동의 삶은 놀이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모두가 ‘놀이의 천재’라는 것, 저 또한 아이를 키우며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어린이집도 이런 상황인데 영어유치원, 놀이학교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학원은 어떨까요?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은 어떤 상황일까요?


몇해 전 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하고 잘 가르친다는 명색에 걸맞지 않게 골목안 상가에 위치하고 있었고, 유치원 교실의 절반 크기밖에 되지 않는 교실에 아이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책걸상에 앉은채 앞에 걸린 칠판과 선생님을 보며 정해진 스케줄대로 수업을 받았고, 그 결과로 작성한 당시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글들이 벽을 장식했습니다. 5세 6세 7세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이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인가요? 다문화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영어나 외국어, 저 멀리 외국 사례를 배우는 것보다 먼저 내 주변 이웃과 친구들의 다름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앞서 가는건 쓸데없는 일이다, 이 시기 아이들은 학습이 아닌 놀이가 삶의 전부라고 이제는 우리 사회가 한목소리로 외쳐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놀이영어, 놀이수학, 온갖 놀이로 치장해 아이들을 속이며 무엇인가를 습득시키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놀이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노력을 우리 어른들이 이제는 해야할 때입니다.

내 아이의 속도와 방향을 존중하려는 양육자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이 있습니다. 이 양육자들은 내 불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더 빨리’의 늪에 밀어 넣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양육자들을 제도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시켜도 늦었다” “지금 안하면 학교 입학후에는 더 뒤쳐진다”며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각종 학습지, 학원, 교재교구 업체의 마케팅, 유치원/어린이집에서 강요받는 각종 학습 프로그램이 이들을 흔들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 주십시오.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미리 한글, 영어 알파벳 익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이의 속도를 충분히 기다리며 마음껏 놀게 하라고 위로하고 응원하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아이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싶은 시기에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때까지 아이들을 기다려줘야 한다는 어른들의 약속을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양육자들이 고민 없이,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기관이 내 아이에게 제일 좋은 기관이라고 선택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어느 기관에 가도 균등한 질의 환경 속에서 풍요롭게 놀며 행복한 유아기를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기자회견 보도자료 링크

https://noworry.kr/policyarchive/?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5429818&t=board&category=726p3691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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