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헌 May 12. 2024

매일 행복을 선택하는 것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연습_매일 행복을 선택하는 것


자주색 작은 "엑스터시(ecstasy)" 노트를 책장에서 꺼내 펼쳤다. 가장 행복하고 고먀웠던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때의 언어로 기록해 둔 노트다. 내가 어떤 순간 가장 큰 행복과 즐거움을 느꼈는지 잊혀진 기억들이 손바닥만한 노트의 장마다 새겨져 있었다. 일상에서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낄때마다 가끔씩 열어보곤 한다. 노트를 열자마자  '자유'란 단어가 보였다. 나를 스쳐간 엑스터시의 장면들이 간단한 목록처럼 드리워졌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들여 선물을 준비하는 것, 친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주문해주고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노래를 따라하고 시를 읽는 것, 주말 아침 피꼬막을 맛있게 무쳐주는 남편의 모습, 정성스럽게 재료를 준비하고 만들고 그 맛이 어떤 맛일까 기다리는 요리의 즐거움, 아침 테라스에서 아침을 먹으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 나란 사람을 정의해주는 동료의 칭찬의 말 등 내 방식의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이 날짜순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함께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친절, 칭찬과 격려뿐만 아니라 내가 즐기는 분위기와 행동도 담겨져 있었다. 읽는 동안 이미 몸을 떠난 정신은 그 시간, 공간으로 들어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그 상황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돈이나 명예,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같은 것은 없었다. 몸을 움직여 기분을 좋게 하는 것,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것과 같은 사소하고 소박한 즐거움이었다. 

사실 직장을 나온 후 몇달은 스스로에 대한 보상으로 한도를 두지 않고 아낌없이 돈을 썼다. 수십년의 직장생활을 마친 위로로 1년간은 스스로에게 그런 투자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으로 구매할 때마다 시댁과 가족 모두에게 과일, 식품, 화장품 등 선물이 이어졌다. 몇 달이 지나자  액수는 점점 더 올라갔다. 하지만 만족감은 시간이 가면서 오히려 조금씩 줄어들었다. 뭔가를 욕망하면 욕망할 수록 더 끝으로 치달을 뿐 채워지지 않는 다는 것을 쉽게 실감했다. 욕망에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돈이 얼마면 충분할까?에 대해 늘 "조금 더 많이"를 생각할 뿐이다. 나 역시 아직 옷장, 신발장과 냉장고는 늘 가득하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미니멀리즘과는 아직 길이 멀다. 달라진 것이라면 의식적으로 소비규모를 조금 줄이려고 시작한 것이다. 잘 차려입고 나갈 직장도 없고, 친구들 외에는 챙길 모임도 없다. 해와여행말고는 큰 돈을 쓸 일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씀씀이가 줄어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살 수 있지만 기꺼이 '사지않는 선택'을 즐겨보기로 했다. 물건 대신 경험이 더 소중했다. 건강한 식재료로 남편과 함께 요리를 하고, 오래전 방문했던 장소를 다시 가보는 것이었다. 


소유를 선택할 때 소유물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주의는 더불어 산만해진다. 온 마음을 담았던 특별함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 뻥뚤린 결핍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계속 군더더기가 붙어나간다. 군더더기의 부피는 편안하지 않은 마음의 바로미터가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갯수가 늘어날수록 늘어나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빼앗기는 시간과 의미있는 경험이다. 더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최적, "단순함"과 만나야 한다. 비결은 결국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최적의 마음상태라고 귀결되었다. 


프롬은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소유하고 소비하는 데서 우리의 존재들 확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들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예속된다. 소유양식은 주체와 객체 모두를 '물건'으로 만들어버리고 여기에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는 죽은 관계가 되어버린다."


물건뿐만 아니라 일주일의 일정도 간소화하였다. 불필요한 약속을 만들지 않았다. 전에는 일종의 강박처럼 뭔가 빼곡히 있어야 제대로 된 루틴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지금, 비워놓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자유였다. 그러다가 계획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기분좋은 일을 벌이는데 그 시간을 쓴다. 


일을 그만 둔 지금은 주말까지 행복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직장일로 인해 주말로 모든 것을 미뤄두었던 일상과 달라졌다. 이제 매일 무엇을 할 것인지 선택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일정을 만든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이주 평범한 것들이 특별하게 보인다. 출근하는 자에서 출근하지 않는 자로 자리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또한 "수많은 절묘함이 모인 조화가 가져온 절정"이라는 것을 잊고 싶지 않다. 불필요한 것들을 거두고 가볍게 사는, 일상은 간소하고 단순해졌으면 좋겠다. 시간이 쌓이면서 평범함이 황홀함으로 바뀌고 일상은 점점 군더더기가 없어질 것이다.


오늘 엑스터시 노트의 연번이 추가되었다. 퇴직한 전 동료에 건낸 말이 스윗함으로 그의 마음에 얹어진 날로 기록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되찾은 월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