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의 회복
어제는 00대학교의 상담심리학과 입학을 위한 수학계획서를 작성했다. 나는 왜 퇴직후 다시 공부하려고 하는 걸까? 문득 친구 S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 남과 비교할 일도 없쟎아." 맞았다. 그럼 나는 여전히 남의 시선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나라면 퇴직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잘 놀거야. ".
제대로 노는 것이란 무엇일까? 매 순간 제대로 노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려면 현재에 있어야 한다. 마음이 방황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이 방황하지 않으려면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하나여야 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몰입. 몸 역시 마음이 하는 것을 따라가 주는 것이다. 글을 쓰는 순간 손가락 역시 마음이 되는 것이고, 음식을 먹으면 혀 또한 음식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동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이란? 나로서 사는 것, 내가 하는 일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퇴직후 일을 하지 않는 상황은 들러붙어 있는 걱정이나 긴장을 해소해주었다. 하지만 불안이 시스템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매일 행복감이 넘쳐나는 건 아니다. 물론 더 쉽게 내가 원하는 행복을 불러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서도 운전대를 잡고 가속페달을 밟아 청사포의 여름 바닷길에서 여유있게 바다멍을 즐길 수 있다. '감정적 건강'은 충분히 회복되었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또 느낀다. 60세 이후 퇴직을 한다면 젊은 노인이 되어 뭔가를 시도할 엄두를 내는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50대도 새로운 도전에 겁이 나지만 주어진 시간과 여유, 재정적 안정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커리어를 만드는데 동력이 되어준다.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경력증명서가 나를 얼만큼 설명해줄른지 모른다. 입학원서의 전공관련 자격증란은 비어있다. 나란 사람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그동안 현장에서의 경험은 나와 분리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동안 일로 만난 사람들과의 수많은 상호작용과 심리상태를 읽는 훈련, 다양한 문제와 갈등을 해결한 경험,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유연한 적응력이 관련 자격증이다.
나는 왜 상담 심리를 공부하려고 하는가?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20년을 기쁘게 보내고 싶은 이유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충분히 미쳐본적이 없는 나를 위한 선물이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현재에 머물도록 하기 위햔 선택이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즐거움이 닿는 활동은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것이다. 그 동안 통과해온 수많은 업다운, 트라우마, 불안, 스트레스는 더 진정성 있는 개입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내 몸이 울림통이 될 때 내가 만나는 상대에게도 그 진심이 통할 것이다. 내 언어와 행동이 뜨거운 태양 아래 마시는 달콤하고 시원한 코코넛처럼 누군가에게 그렇게 닿았으면 좋겠다.
퇴직 후 9개월. 오늘 나는 수학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쓴다. 9월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삶의 한 구석을 마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