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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헌 May 09. 2024

아침의 꽃

나를 돌보는 방법

수요일 오전은 꽃꽃이 수업이 있다. 올해 3월 집 근처 평생학습원의 취미 강좌를 등록했다. 직장에 있을 때도 꽃꽃이 동아리에 있었고 한 달에 한번 점심시간엔 남대문 꽃시장에 들렀다.  퇴직 후 새로운 취미로 가죽공예, 제빵도 시도했지만 도중에 환불을 받았다. 가죽공예는 내가 원하는 창작물까지 연습기간이 많이 필요했고, 빵은 생각보다 노동집약적이었다. 그래서 사먹기로 했다. 끝까지 남은 것은 꽃꽃이와  유화였다. 하나는 실물로, 하나는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창조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매력적이다. 좋아하는 활동을 통해 위안을 받기도 하고, 성찰하기도 하고, 갑자기 어느 순간 뭔가 기분좋은 느낌에 휘감기는 경험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오늘 수업의 재료는 보라색 알리움(Alium, 조팝나무(Bridal Wreath), 나리(Lily), 리시안셔스(Lisianthus), 청사철이다. 수업전 오늘 수업의 재료인 꽃들을 테이블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먼저 꽃을 하나씩 집어들고 꽃과 잎의 모양, 줄기, 색깔을 눈에 담는다. 꽃받침의 모양, 잎의 크기와 색깔, 손가락에 닿는 감촉, 꽃봉오리의 개화 정도 뿐만아니라 휘었는지 곧은지 각도도 담는다. 본홍과  흰색 리시안셔스를 코에 살짝 부비며 향을 맡는다. 옅은 향이 올라온다.  


화형(꽃꽃이 타입)에서는 하이라이트로 중심이 되는 꽃, 받쳐주는 꽃, 또 틈새를 메워주는 필러의 역할이 있다. 오늘은 바로 세우는 직립형이다. 서로 공간을 확보해주고, 높낮이를 주어 입체감을 주고, 꽃이 피는 순서까지 감안해서 자리를 잡아주워야 한다. 같은 연두빛이라도 조팝의 작은 잎과 나리의 길쭉하고 끝이 뾰족한 잎의 초록은 다르다. 맨질맨질한 청사철의 잎과 고무 튜브같은 나리의 단단한 꽃봉오리, 손바닥을 동그랗게 오므려 만지는 알리움의 감촉이 다르다. 


그래서 한 송이 꽃을 앞에 두고 꽃이 왔을 여정을 따라가본다. 제철 과일, 음식, 계절에 맞추어 듣는 노래처럼 제철 꽃도 그 자체로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어느 토양, 어느 비닐하우스에서 주인의 따뜻한 돌봄과 햇살을 받고 이렇게 예쁘게 피어났을까? 몇 개월의 생애주기를 어떻게 지나왔을까?하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꽃에게 묻는다.  먹는 물의 양이 다르고, 좋아하는 온도도 다르고,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시드는 시간도 다르다. 한 주동안 화병에서 절정을 맞고 서서히 시들어 죽음을 맞는 꽃들의 일생을 조심스렇게 바라다 본다.


식물도 또한 동물과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주어진 토양을 익히고,적응하고, 힘을 쏟아부어 뿌리를 내린다. 햇살을 만나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낌없이 팔을 벌려 그 순간 담을 수 있는 태양빛을 모두 몸에 저장한다. 그리고 하루 하루 커간다. 새 순은 가지에서 버티어 내고, 꽃망울은 시간을 기다려 피어난다. 줄기로 물을 끌어올려 구석 구석 실어 날라준다. 매일 매일 보라를 만들고, 연두를 만들고, 타고난 색의 절정을 향해 게으름 한번 피우지 않고, 뒤돌아 보지 않고  나아간다. 그래서 꽃이 벌어지는 순간은 꽃의 한방울 눈물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늘 만난 알리움은 속살같은 수백개의 하얀 꽃이 보라 불꽃처럼 터져 나온다. 잎 하나 거두지 않은 줄기는 그대로 직립하여 부끄러움이 없이 당당하게 살았노라고 말을 건네오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하느냐?고 묻지 말고 이미 네 안에 있는 것들을 발견해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꽃들만 보느라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고.


꽃의 질서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꽃이 있고자 하는 자리,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아야 한다고 강사님은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아니라 기꺼이 꽃의 마음이 되어 최적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꽃이 내 작은 방의 책상 모서리로 들어온 순간, 작은 행성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꽃을 위해음악을 한 곡 들려주고 싶었다. 매일 아침 꽃이 기쁨으로 눈물 한방울 터트릴 수 있는 꽃의 마음을 이해하는 곡. 드뷔시의  "La mer" (1903-1905,바다)를 골랐다. 바다의 여정 또한 꽃이 지나온 길이나 내가 수십년 직장생활동안 겪은 시간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침의 고요함도 있지만 폭풍우와 거센 바람을 맞아 휘청거리기도 하고, 톡 눈물 한방울 떨어지는 감동의 드라마틱한 장면들도 들어 있다. 


그래서 꽃을 마주하며 나를 돌본다. 나에게 오고 있는 시간과 다가오는 아름다운 품경을 생각한다. 내 하루도 분홍과 하양, 연두와 보라처럼 질서를 잡고 적정한 거리를 두고 나만의 깊이와 질감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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