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새벽4시. 여름을 보내는 비가 내렸다. 그 사이 매미는 떠났고 귀뚜라미가 새벽의 공간에 들어왔다. 방석위에 작은 쿠션을 얹고 앉았다. 콧 잔등과 윗 입술의 트라이앵글 존에서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숨의 세기와 들어오고 나가면서 코의 어느 부위에 접촉하는지 느껴보았다.
열흘동안의 침묵 명상을 마치고 지난주 집에 돌아왔다. 직장인이었다면 휴가내기도 어려웠겠지만, 방학을 마무리하면서 명상센터의 명상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덕천리. 도착한 첫 날 아담한 명상센터가 위치한 산골마을을 한 바퀴 혼자서 걸었다.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려져 있고 흰구름이 봉우리마다 걸려있었다. 밭에는 고랑마다 수확을 마친 후 남은 수박들이 몇 덩이씩 굴러다녔다. 몇 안되는 농가의 마당에는 빨간 고추가 습기를 날리며 붉은 빛깔을 더해가고 있었다. 골목마다 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꽃들이 키를 달리해 옹기종기 예쁘게 피어있었다. 어쩌다 마을을 통과하는 차량소음이 전부였다.
"4시30분부터 저녁 9시30분까지 개인과 단체명상의 열흘동안 마지막날을 제외하고 참석자들은 침묵을 유지해야 합니다.". 참가신청을 했을 때 이 힘든 수행을 "기꺼이" 참석하겠느냐고 재차 확인하는 메일을 받았다. 비용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기부하는 방식이었다. 도착한 날에는 저녁이 제공되었고 휴식 후 명상홀로 안내를 받았다. 홀은 천정이 높아 개방감을 주었다. 워밍업 명상의 시작이었다. 파란 방석들이 번호 순서대로 적정한 간격을 두고 가로, 세로 일곱줄로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남녀 전체 약 백여명의 참석자들이 적정한 여백을 두고 자리에 앉았다. 높은 천정에는 낮은 조도로 은은한 조명이 긴장감을 완화하고 안정감을 주었다. 어깨에 두른 숄의 잔잔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숨을 고르는 소리외에 홀 안은 바로 정적에 잠겼다. 넓고 깊은 고요가 코의 호흡마다 느껴졌다.
이튿날, 3시 50분. 1인실의 숙소에 기상을 알리는 작은 알람음이 흘러나왔다. 바로 샤워를 마치고, 간단한 동작으로 몸을 풀고 명상홀로 향했다. 새벽 명상 두 시간은 숙소 또는 명상홀에서 자신이 선택해서 할 수 있었다. 내 왼쪽 옆자리에 계신 분이 먼저 와 계셨다. 눈을 감으니 마치 나 혼자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으니 외부자극이 차단되고 마음은 코끝 호흡과 감각을 찾아갔다. 하지만 채 일 분이 되지 않아 바로 집중을 잃었다. 마음은 끊임없이 지난 일과 닥치지 않은 일을 쫓아가느라 바빴다. "그것이 마음의 성질입니다. 다른 생각이 찾아오면 비난하지 말고, 바로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생각이 왔다고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로 되돌아오는 끊임없는 연습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불안, 분노, 걱정은 마음이란 하늘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구름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날, 몸은 갖가지 통증으로 말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오른쪽을 메인으로 너무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른쪽 부위의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깨의 무거움, 허리와 옆구리의 비대칭적인 압박, 무릎이 타는 듯이 욱신거렸고 시간이 갈수록 팔도 저렸다. 자세를 여러 번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인내심을 걱정했지 체력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쟎이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몸이 보내는 신호를 그제서야 조금씩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만감고 호흡만 찬찬히 살펴도 우리는 금방 유쾌와 불쾌의 감각적 자극을 뛰어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시간 새벽 명상후 아침식사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식사만큼 즐거운게 있을까? 빵과 죽, 야채와 요거트, 견과류와 커피와 차. 하루 두끼의 식사로 공복의 시간이 길어져 꼬르륵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점심 역시 두부, 콩, 가지, 된장, 무우 등으로 자극이 없는 저염식으로 차려졌다. 음식의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하고 마주한 정갈한 음식을 오래 씹으며 아주 천천히 먹었다. 목 넘김까지 느끼니 저절로 말로 할 수 없는 따뜻함이 먹먹하게 올라왔다. 고귀한 침묵을 유지하지만 옆 사람이 어떤 반찬을 즐기는지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옆에 앉은 그녀의 목소리는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식사후 명상 홀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텀블러의 뚜껑을 열고 찻잔에 차를 부었다. 앞이 전혀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안개는 봉우리들을 마치 아기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엄마처럼 미동도 없이 나무들에게 기대했던 습기를 넉넉히 주었다. 부유하던 작은 물방울들이 나뭇잎에 닿아 한방울씩 똑똑 안개비가 내렸다. 이미 모퉁이에 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 역시 떠다니면서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아침 해로 안개가 걷히듯이 다른 생각이 들러붙을 때마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 마음의 균형을 잡으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느끼는 감각은 순간이며 결국 사라진다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핸드폰을 보지 않고, TV 뉴스가 없는 일상이었다. 산책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더 많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누구는 곤충을 바라보고, 꽃과 나무를 보고, 하얀 뭉게구름에 미소를 날리고, 빨래를 널고, 혼자 빠르게 걷고,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티셔츠와 바지, 모자, 양산의 색과 좋아하는 스타일이 들어왔고 왜 여기에 왔을까?를 혼자 상상해 보기도 했다. 아침에 우는 벌레소리를 구분해서 듣고, 저녁에는 별들이 쏟아지는 하늘을 오래토록 올려다보고 북두칠성을 따라가 보았다. 나와 고요와 편안함만을 두었다.
"내일은 침묵이 끝납니다.". 말을 한다는 것이 나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원치 않는 말을 듣고 반응을 해야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옆에 앉은 그녀도 "침묵이 끝나는게 오히려 두려웠어요."라고 했다. "그것이 어떤 두려움인지 잘 설명할 수 는 없을 것 같아요.". 열흘째가 되는 날 귀는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어마어마한 소음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그 세기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이런 경험은 살아오면서 처음이었다. 다시 내가 살고 있던 세상으로의 귀환이었다.
참석자중에 20대들이 많아 조금 놀라웠다. 명상가로도 유명한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고 온 친구도 있었고, 일본 절에서 명상중인 친구도 있었다. 풍요로움에서 성장한 20대는 기성 세대보다 더 빨리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다 휴학을 하고,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두달 돈을 벌며 머물기도 했다고 했다. 그래서 복학했을 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제대로 표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하는 회사 일이 아주 즐겁다고 했다. 다른 40대의 여성은 가족으로 다친 마음을 안은채 사람이 무서워 3년을 문밖으로 나서지 못했다고 했다. 어느 날 내가 이렇게 환자로 세상을 마감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용기를 내어 한 발짝을 내딛었다고 했다. 올해 사이버 대학의 학생이 되었다고 예쁜 미소를 지었다.
진안 산골마을의 명상센터에서 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엉덩이 힘을 테스트하고 오로지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관찰했을 뿐이었다. 딴 생각이 들어오면 그 마음도 허락하고 다시 호흡과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 뿐이었다. 복잡하지 않았다. 단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지나간 일로 괴로워하지도 말고, 오지 않은 일을 기대하며 나를 닦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서울로 혼자 올라오면서 그 동안 한번도 즐기지 않았던 운전을 발과 다리의 감각을 느껴가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두려움과 불안이 머물던 자리를 내주었다. 그 가벼움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전방을 주시하며 아주 가벼워진 채로 몸은 저절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 무거움은 사라졌고 나는 "지금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