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살기, 호치민의 아침으로 들어왔다.

- 직장을 나온 지 2년 반, 경계의 시간을 통과중이다.-

by 장헌

호치민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아침 기온은 20도 안팎으로 아주 상쾌하다. 도착 다음 날, 가장 먼저 한 일은 매일 가는 요가원과 커피숍을 검색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요가원이 있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음에 드는 카페도 하나 발견했다. 요가원에서는 요가뿐 아니라 춤 수업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월·수·금에는 오전 7시, 화·목에는 6시 30분에 수업이 시작되고, 저녁에도 시간대별로 요가와 초보자를 위한 힙합, 하우스댄스, 와킹댄스등 다양한 종류의 클래스가 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자 희미하게 날이 밝아왔다.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호텔을 나섰다. 골목을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쌀국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코너에 있는 노점식당의 여섯개 테이블은 이미 이른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이 Bún mọc(고기완자국수)을 먹고 있었다. 큰 도로로 들어서자, 도로를 메운 길게 이어진 오토바이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인도위에는 아침부터 양념한 돼지고기를 숯불에 구워내느라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근처 시장에서도 상인들은 리어카위의 매대에 과일들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가게 문 앞에도 제철 야채들을 펼쳐놓았다. 길 양쪽으로는 베트남 전통모자인 논라를 쓴 아주머니들이 좌판에 수박, 부쓰어(vú sữa, 우리 '감'과 맛이 비슷한 보라색 과일), 망고와 껍질을 벗긴 파인애플을 두 개씩 비닐봉지에 걸고 있었다.


요가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침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들렀다. 시장 진입로 왼쪽, 초등학교 교문 너머로는 자주색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을 맞춰 아침 체조를 하고 있었다. 상인들은 가게 앞에 의자를 내놓고 커다란 철제 쟁반 위에 여주(Khổ qua), 가지, 호박 같은 채소를 가득 쌓아두었다. 원형과 직사각형 플라스틱 소쿠리에는 콩, 오이, 옥수수, 방울토마토, 양배추가 넘치듯 담겨 있다. 어떤 아저씨는 오토바이 뒤에 철제 바구니를 달고 닭고기를 팔고 있었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비좁은 시장통을 세련된 오토바이 운전기술로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시장 중간쯤에 이르자 1층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건물 전면에는 새하얀 커튼과 옅은 분홍 커튼이 층층이 드리워져 있었다. 입구 양쪽에는 분홍과 하양, 빨강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화환과 신랑·신부의 결혼 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신부 집에서 올리는 결혼식, Lễ Vu Quy였다. 위아래 모두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젊은 여성들과 아래에는 검정 바지를 입은 남성들이 입구에 줄을 맞춰 예를 갖추고 있었다. 친척으로 보이는 여성들은 저마다 색과 패턴이 다른 화려한 아오자이를 입고 있었다. 행인들도 웃으며 지나가다 안을 흘낏 들여다보기도 하고, 잠시 멈춰 구경하기도 했다.


가게 앞 유리 진열장에는 아침으로 먹기 좋은 반미와 반꾸온(Bánh cuốn)이 놓여 있다. 전병처럼 아주 얇게 쪄낸 반죽에 다진 버섯 소를 넣고, 오뎅과 숙주, 허브를 곁들여 달콤한 소스에 비벼 먹는 음식이다. 가격은 모두 2만 동, 우리 돈으로 천 원 남짓이다. 연유의 깊은 단맛과 계란의 부드러움, 카라멜의 쌉쌀함이 어우러진 디저트인 반 플란(Bánh Flan)도 만 동이 채 되지 않는다.


8시가 넘으면 아침 햇살이 금세 뜨거워지기 때문에, 시장은 새벽 5시부터 준비를 시작해 8시쯤이면 자연스럽게 파한다. 도로와 인도를 점유하는 노점 시장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공안의 행정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망고와 파파야, 바나나, 파인애플을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할 만큼 비닐봉지에 가득 담았지만 만 원이 넘지 않았다. 5년 전 베트남을 떠났을 때와 비교해도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은 점이 다소 놀라웠다. 최근 경기침체로 구직이 많이 어렵다는 베트남 친구말이 떠올랐다. 동트기 전부터 살아 움직이는 시장은 과거를 슬퍼할 필요도,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할 이유도 없이, '오늘'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했다.


호텔을 고를 때, 근처에 제철 과일을 싸게 살 수 있는 전통시장이나 외식을 할 수 있는 상가가 가까이 있는지를 먼저 고려한다. 아침으로 사 온 반꾸온을 먹었다. 아주 부드럽게 말린 전병의 쫄깃함과 얇게 저민 버섯 소, 숙주와 허브 향이 어우러져 금세 기분까지 좋아졌다. 퇴직 후 즐거움 중의 하나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아침을 내가 정한 속도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


아침을 마친 뒤 근처 카페로 향했다. 똔득탕 대학교(Tôn Đức Thắng University, 베트남 제2대 국가주석의 이름을 딴 대학) 맞은편에 있는 곳으로, 쉬는 날 없이 24시간 운영한다. 넓은 마당으로 들어서니 입구 옆 상가에 사는 갈색과 검정의 개 두마리가 한가롭게 잠을 자고 있었다. 어제는 손으로 만져주니 손가락을 무는데 아기처럼 살살 무는 시늉만했다. 2층으로 된 커피숍으로 들어서면 1인용 테이블과 넓은 직사각형 테이블들이 충분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다. 팝송이 잔잔히 흐른다. 어제까지 일층에 세워져 있던 크리스마스트리는 오늘 정리 중인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젊은 학생들은 이곳을 도서관처럼 하루 종일 차지하고 앉아 공부를 한다.


천장에는 여러 개의 전구가 박힌 원형 양철 프레임을 바나나 잎과 꽃무늬로 수놓은 태피스트리로 감싼 조명이 걸려 있다. 뒤쪽 벽면에는 베트남 응우엔 왕조의 제11대 황제인 유신제(Duy Tân)(1900-1945)과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의 부인, 남프엉 황후(Nam Phương, 1914-1963)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유신제는 프랑스 식민 당국에 의해 7세에 황제로 추대되었으나, 16세에 프랑스 지배에 순응하지 않고 반프랑스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실천적 저항운동을 한 황제였다고 한다. 왼쪽 벽에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던 1887년부터 1954년 사이 발행된 우표들을 확대해 액자처럼 전시해 두었다. 이 시기의 우표는 식민 지배와 행정 권력을 시각적으로 선언하는 국가 도구였다. 자원 수탈, 군사작전과 효율통치의 지배 인프라로 사용된 철도와 교량, 당시의 오토바이, 프랑스인이 건축한 건물 사진이 함께 담겨 있다. 그 옆에는 호치민 주석(1890~1969)의 노년 초상 우표가 자리한다.


2018년 휴직으로 호치민행을 준비했을때 제일 먼저 한 일은 900쪽이 넘는 『호치민 평전』을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왜 베트남사람들이 호치민을 호아저씨(Bác Hồ)라고 하며 친근하면서도 존경이 담긴 호칭으로 부르고 추앙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카페를 도서관처럼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MZ 세대에게 호치민은 과연 어떤 인물로 떠올려질지 문득 궁금해졌다.


베트남의 카페는 음료뿐 아니라 국수 같은 간단한 음식과 디저트도 함께 파는 곳이 많다. 이곳 역시 밖에서 주문한 음식을 카페 안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커피와 과일로 만든 음료만 해도 종류가 수십 가지다. 매일 올 때마다 다른 과일 음료를 골라 마신다. 가격은 5만~5만 5천 동, 우리 돈으로 3천 원 안팎이다. 오늘은 진한 코코넛 밀크티(Cà phê Cốt Dừa)와 연꽃차(trà sen vàng)을 주문했다. 시원한 코코넛과 연꽃차의 꿀맛이 달콤하다. 요즘 베트남에서는 대부분 QR을 통한 실시간 결제가 이루어진다. 베트남 은행 계좌를 만들고 은행 앱을 설치한 뒤 QR을 스캔해 결제하는 방식이다. 동네 카페부터 길거리 카페까지 선택지는 셀 수 없이 많고, 오래된 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나 독특한 인테리어의 대형 카페도 계속 생겨난다. 며칠 전 들렀던 한 카페는 실내 중앙의 오래된 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살려 복층 구조로 만들었는데, 편안하고 정돈된 분위기 덕분에 오래 머물고 싶어졌다.


카페는 어디를 가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도시 곳곳에 흩어진 아지트 같은 공간들이다. 오늘도 테이블마다 안경을 쓴 젊은이들이 노트북 화면을 넘기거나, 휴대전화로 채팅을 하며, 저마다의 하루에 조용히 접속하고 있다. 나는 올해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방학동안 읽어야할 논문을 펼쳐놓는다. 창밖에는 사계절 내내 초록인 나무 아래로 오토바이가 들어오고 나간다. 나의 시간은 폭설이 내린 서울과의 시차만큼 조금 느리게, 천천히 흐른다. 나는 아직도 직장인과 퇴직자 사이의 긴 문턱을 통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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