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달라'를 외쳤지만 실패를 피하는 공식을 따르는 아이돌
회사가 신인 아이돌을 선보이는 경우, 크게 두 가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선배 아이돌의 이미지를 영(young)하게 이어 받는 경우, 또 다른 경우는 팬층이 겹치지 않게 완전히 스타일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YG의 블랙핑크가 해당된다. 투애니원의 브랜드 이미지가 노후화가 진행되자, 블랙핑크로 이를 대체하고 나아가서는 조금 더 고급지고 젊은 감각을 덧붙였다. 후자는 트와이스와 ITZY의 관계다. 생기발랄한 대학교 신입생의 느낌을 강조하며 데뷔한 트와이스는 ‘졸업’이라는 신입생의 숙명을 마주했다. 그렇게 트와이스 콘셉트 포지셔닝을 위해 분투 하고 있을 때, ITZY는 트와이스의 이미지를 차용해선 안되는 상황이었다. 기존 트와이스 팬들을 신인 그룹이 뺏어오는 상황, 제살 깎는 경쟁만 일어날 뿐이기에 완전히 이미지를 다르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미지를 차용해야 하는가가 주요한 문제가 되는데 우선 섹시한 콘셉트는 짧은 수명으로 인해 배제했을 것이다. 그 다음 떠오르는 건 소위 말해 ‘센 언니’들이다. 힙하고 세련된 느낌의 그룹으로 비교적 롱 런 할 수 있는 이미지지만, 이미 국내에는 블랙핑크가 그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다. 변주 없는 트렌디함은 결코 트렌디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아류가 될 위험성이 따른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과 콘셉트를 짜기엔 위험 부담이 큰 상태였기에 ITZY는 ‘실패를 피하는 공식’을 따른 아이돌이 되었다.
ITZY에는 블랙핑크, 레드벨벳, 트와이스 콘셉트가 모두 담겨 있었다. 이시대에 통한다, 싶은 콘셉트는 모두 담아 실패할 확률도 최소화했다. 말 그대로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다. 이러한 전략은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실패할 확률을 적지 않게 갖고 있는데 ITZY는 각 특성간의 유기성을 잘 파악해 억지스럽지 않게 풀어 놓았다. 그러나 취향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콘셉트가 존재를 만드는 아이돌 세계에서 언젠가는 포지셔닝을 해야 한다. ITZY 그룹만의 독자적인 영역과 두터운 팬층을 위해선 포지션이 필요하다. 결국은 이미지 싸움이기에 아이돌은 본인의 포지션을 구축해야만 하는 것이다.
ITZY는 퓨전 그루브 ‘달라달라’로 차별성에 포커스를 맞춰 데뷔했지만, 사실 내막을 살펴보면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퓨전 그루브는 힙합과 하우스를 적절하게 합친 장르인데 이미 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서는 힙합과 하우스를 자유자재로 배합해 음악을 생산해 내고 있다. ITZY 측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장르에 ‘퓨전 그루브’라는 새로운 네이밍을 통해 차별화를 꾀했다. 완전히 새로운 건 없기에, 그들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힙합과 하우스는 굉장히 포괄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하나의 특색으로 자리잡기엔 쉽지 않다. 콘셉트도 MZ세대가 좋아하는 걸 전부 섞었는데, 음악도 유행하는 걸 전부 담았다. 그러니까 ITZY에게는 성공적인 데뷔 이후에도 여전히 포지션을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는 셈이었다.
그 이후 발매한 곡들 역시 여러 장르를 한 보울에 섞기보다, 마치 블록을 쌓는 것처럼 제각기 그 색이 살아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곡의 진행을 계속해서 선택한 이유는 조화로움보다는 색다름을 표방하는 그룹임을 조금 더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ITZY는 다르지 않다. 오히려 팬덤 위주의, 명확한 세계관을 보여주며 점점 더 세밀하게 콘셉트를 잡아 가는 아이돌 시장에서 ITZY는 ‘대중 아이돌’을 노리고 있다. 선배인 원더걸스와 트와이스가 걸어온 길과는 다른 척, 그대로 따르고 있는 셈이다.
‘마피아 in the morning'으로 컨셉추얼한 걸 시도했으나, 이역시도 기존 엔터시장이 그려온 여성 마피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캣우먼의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해 나태해보이기까지 한다. 대중이 ITZY에게 바랐던 건 ’달라달라‘ 시절의 뻔뻔함이다. 달라달라를 외치지만 귀에 익숙한 멜로디와 힘 있게 나가는 안무. ’Love yourself'라는 다소 뻔한 주제까지. 다름을 외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유행을 쫓는 Z세대의 이면적인 특성을 닮아있다.
이후 발매한 첫 정규 앨범, [CRAZY IN LOVE]에서 ITZY는 다시 첫 ‘달라달라’ 시절로 돌아온다. 이번엔 확고하게 Z세대를 노린 것처럼 솔직함과 당당함을 표방하고 있다.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LOCO'는 오히려 달라달라 시절의 대중성을 표방하고 있다. 퓨전 그루브와 뭄바톤, 트랩 사운드를 결합한 네오 퓨전 그루브는 이전 ’달라달라‘에 라틴 무드가 조금 더 추가된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각 장르를 결합했다고 표현했지만, 장르는 LOCO안에서 섞이지 않고 느슨한 유기성만을 가진 채 곡을 전개해 나간다.
한 마디로, 실험을 하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렇다면 ITZY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ITZY는 어디에 포지션을 두어야 하나.
소속사는 이러한 의문에 '대중'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ITZY는 원앤온리가 되기 보다 국민 아이돌이 되는 쪽을 선택했다. 자신의 선배인 원더걸스, 트와이스가 걸어온 길이다. 하지만 타겟이 넓다는 건 타겟이 없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 될 수 있다. 타겟팅을 뾰족하게 하라는 말은 적어도 ‘이 타겟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담보인데 그 대상이 대중이 되면 어떤 것도 담보할 수 없다. 지금까지 ITZY는 JYP가 만든 이미지와 세계관 보다는 멤버 개별의 에너지로 가도를 올렸고, 달려왔다. 정규 앨범이라는 커다란 사건도 ITZY는 그들의 파워로 밀어부쳤다. 하지만 언젠가 에너지는 닳고, 아이돌은 늙는다. 이제는 ITZY라는 독립된 존재가 아이돌 세계관에서 어떠한 단어를 선점하게 될지, 결정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