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세계관이 아닌, 메시지
말광량이 콘셉트로 썸머 퀸을 노렸던 걸그룹 밍스는 섹시함과 발랄함을 주무기로 대중 앞에 나섰다. 결과는 대참패. 썸머 퀸 자리에는 이미 씨스타가 포지셔닝 하고 있었고, 밍스와 콘셉트가 완벽하게 겹치는 상황이었다. 대중들 입장에서는 굳이 밍스를 소비할 필요가 없었기에 밍스는 사라졌다.
돈이 흐르는 곳은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비슷한 양상을 띤다. ‘이게 돈을 그렇게 벌어준대’ 라는 말이 본인에게까지 전해졌다면, 이미 그 시장은 더 이상 그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무렵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다. ‘남들이 하길래’ 하는 건 이미 몇 보는 늦은 선택이다. 아이돌 역시 ‘산업’이다. 산업 안에서 돈을 벌기 위해선 팔로워가 아닌 리더가 되어야 한다. 해피페이스 엔터테인먼트 역시 같은 생각을 했고, 용의 꼬리가 되어 잘릴 바에는 뱀의 머리가 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미 레드오션 중에서도 레드오션인 아이돌 시장에서 빈자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20년에 발표한 <2019 콘텐츠 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케이팝의 인기로 인한 시장규모 확대로, 음악 기획 및 제작업을 영위하는 사업체의 평균 매출액은 2012년 5억 3,300만 원에서 2018년 14억 600만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사업체 자체는 1,192곳에서 958곳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주었다. 산업이 부흥한다고 해서 그 산업에 속한 인물들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호황을 맞은 극소수와 나머지의 격차만 심화될 수도 있다. 아이돌 시장은 세계적으로 호황을 맞았지만, 아이돌 그룹들은 줄줄이 해체를 면치 못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해피페이스 엔터테인먼트는 이미 아이돌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타겟으로 하기엔 선점이 어렵다고 판단,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던 음악 팬들을 타겟으로 정했다.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를 즐기지만 아이돌의 라이트한 매력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 바로 록 팬들이다. 해피페이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내놓은 7인조 걸그룹 ‘드림캐쳐’는 기존 아이돌은 시도하지 않았던 록과 헤비메탈 성향의 일렉트릭 기타 선율을 배경으로 무겁고 어두운 소리를 들려줬다.
마니악한 세계관과 아이돌판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관절이 도드라지는 군무, 찢어지는 듯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 공포 영화를 방불케 하는 MV는 확실히 기존 아이돌판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미지였고 드림캐쳐는 헤비메탈 아이돌이라는 장르를 선점하는 데에 성공했다. 탄탄한 실력에 이러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타 아이돌이 없으니 드림캐쳐가 마니아층을 포섭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드림캐쳐 팬들은 ‘왜 드림캐쳐는 실력도 좋고 세계관도 확고한데 뜨질 않죠?’ 라고 말한다. 팬 개개인의 충성도는 높지만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진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드림캐쳐는 국내보단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며 해외 팬 쌓기에 힘을 쏟고 있다.
드림캐쳐가 ‘대중화’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조심스럽지만 ‘아직까진’ 아니오, 다. 드림캐쳐가 마니아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세계관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런데 사실, 아이돌에게 세계관이라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아이돌의 시초라 할 수 있는 HOT부터 EXO, 여자친구까지 그 치밀함의 정도가 다를 뿐 모두 본인들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개는 그 세계관을 기반으로 콘셉트 기획부터 캐릭터 설정, 콘텐츠 제작을 한다. 따라서 아이돌의 수만큼 세계관은 존재하고, 그중에서 공포나 특이한 세계관을 차용한 그룹이 결코 없지 않았다.
드림캐쳐가 일부분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세계관이라는 ‘상품성’ 파트보다 아이돌 개개인의 역량과 팀의 단단함과 같은 ‘예술성’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상품성과 예술성의 비율로 놓고 본다면, 드림캐쳐는 예술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그룹이다. 록과 헤비메탈 리스너들이 드림캐쳐의 팬이 된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은 드림캐쳐의 세계관이 아닌 음악성에 마음을 연 것이다. 드림캐쳐 하면 세계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지만, 그들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세계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드림캐쳐가 ‘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바로 상품성 파트를 높이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내 새끼들’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면 된다. 이때 중요한 건 세계관이 아닌, 메시지와 음악의 조화다.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토대로 SNS 소통을 하고, 이러한 세계관에 몰입하기 보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드림캐쳐는 악몽 시리즈가 끝난 후, 디스토피아 3부작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이미 던진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메시지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다. 어느 때보다 예민하고 상처 받기 쉬운 10대, 그들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세밀하고 흥미로운 세계관을 만든다 한들, 그 세계관이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에 공감과 진정성이 없다면 대중적인 성공은 어렵다.
아이돌 역시 하나의 브랜드다. 브랜드는 신뢰를 먹고 자라며, 신뢰는 브랜드의 가치에 공감할 때 생기는 열매다. 결국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소는 그 브랜드가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다. 세계관은 이 메시지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세계관에만 집중한다면 껍데기를 꾸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드림캐쳐는 이미 내실을 충분히 다졌다. 이제는 ‘세계관’이라는 포장지에 그만 집착해야 할 시기다. 대중은 세계관이 아닌, 메시지에 공감해야만 진정한 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