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밀착형 통역사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

by 양명순

한 개인을 위한 통역, 그것도 그 사람의 건강이라든지 재정상태 또는 가정사가 주제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생활이 노출된다. 그러므로 중간에서 모든 얘기를 같이 들어야 하는 통역사의 직업윤리 가운데 개인정보 비밀유지는 기본덕목이다. 예외의 경우가 아니라면 영어에 불편함도 없고 상황도 잘 아는 자녀가 옆에 있더라도 당사자가 통역사를 통해서 직접 얘기해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통화를 원한다 해도 즉석에서라도 대리인 등록을 하고 통화가 가능하다.


철저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서 당사자와 얘기하고 통역사는 양쪽을 오가며 일인칭화법으로 뜻을 전달한다. "검사결과 암은 아닙니다." 같은 좋은 소식도 "아이가 학교에 출석하지 않고 있어서 학부모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 같은 가슴 철렁한 얘기도 정확하게 최대한 담담하게 통역전달한다.


본인확인 절차의 필요성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유난히 까다롭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른바 임시거주자 그중에서도 워킹홀리데이 메이커 들일 것이다. 일을 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세금을 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워홀러들은 국세청이나 이민성과의 행정업무가 중요하다. 낯선 나라에서, 시드니나 멜본 같은 대도시보다는 농장이나 공장이 있는 외곽지역에서 특히 지금이라면 40도 까지도 올라가는 더위속에서 통역사를 통해 전화로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수월한 절차가 되기를 바라며 몇 가지 제안해 본다.


핸드폰 번호나 주소가 바뀌면 기록을 해두어 이전 주소를 물어보면 답할 수 있도록 한다.


일을 시작하면 고용주가 반드시 들어줘야 하는 연금 superannuation이 어느 회사에 가입되어 있는지 회사 이름을 확인해 둔다.


정부기관에서 받는 편지는 잘 보관해 둔다. 내 이름으로 오는 편지에는 오른쪽 상단에 항상 Our Reference, 즉 참조번호가 있다. 고유한 번호이므로 나를 증명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화통화 후에도 통화내용에 따른 reference number를 요청할 수 있다. 이런 통화가 분명히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꼭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는 본인을 호주 원주민으로 규정하냐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통역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외모상으로는 원주민처럼 보이지 않지만 조상이 원주민이기에 본인을 그렇게 규정하는 수가 있으므로 모두에게 반드시 질문하도록 되어있는 정부 방침이다. 그렇지 않으므로 아니요라고 답하면 된다.


본인을 확인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비밀질문 Secret Question 이란 게 있다. 질문을 골라 본인만 아는 답을 등록해 두는 방법이다. 학창 시절 제일 좋아했던 과목은? 혹은 나의 첫 번째 반려견 이름은? 같은 질문에 나의 답을 등록해 두었다가 바로 그 답을 제시하므로 본인을 인증할 수 있다. 온라인 계정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법으로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짜장면을 등록했는지 탕수육을 등록했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진솔하게 답해둬야 하는 것이다.


이름이나 이메일 주소를 부를 때 스펠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D인지 T인지, B인지 P인지 혹은 M인지 N인지 원어민들끼리도 잘못 듣기 일쑤이다. 국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래 표를 참고해서

B for Bravo 혹은 P for Papa로 정확하게 할 수 있겠다.


호주 워홀러들의 단체 채팅방에 약 만 명 정도의 인원이 있다고 한다. 지금 내가 먹는 한창 맛이 오른 딸기를 따는 사람, 육가공 공장에서 고기를 손질하는 사람, 손으로는 부지런히 커피를 만들며 머리로는 내일까지 내야 하는 집세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두는 누구의 귀한 아들, 딸이며 이 땅의 젊은이들이다. 통역사의 입장에서는 통역서비스를 많이 찾아주면 물론 좋지만 그래도 부딪혀 보라고 하고 싶다. 살아보는 짧은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내가 주저했던 그런 일들에 도전해 보라! 나이 제한이 있는 이 기회, 이 순간에 그대들은 진정한 여행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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