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밀착형 통역사

커피 한잔도 안 돼요

by 양명순

생활밀착형 통역사의 일에는 가정방문도 포함된다. 움직임이 불편하거나 교통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집으로 방문해 드린다. 출산을 하고 퇴원한 산모와 아기를 위해 그 지역의 간호사가 집으로 방문하여 아기의 발달을 체크해 주고 엄마도 심신을 잘 회복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친정엄마가 해주시는 산구완에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식구가 가까이에 없기 쉬운 이민생활에서는 반가운 서비스임이 분명하다.


더 이상의 치료방법이 없어서 통증관리만 받고 있는 환자도 병원보다는 편안한 집에서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케어 해주고 유언장이 왜 필요한지 혹은 환자 사망 시 어떤 법적 절차들이 있는지 원하면 그 방면의 전문인들이 찾아와 설명해 드린다. 할 수 있으면 내 의지로 자주적 결정을 하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의 삶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과 같이 일하게 되니 부분적인 정보일지언정 내 귀에도 솔깃하다.


작업치료사라고 번역되는 Occupational Therapist의 방문은 노약자나 장애인이 있는 살고 있는 집에 안전상 위험한 요소가 혹시 있는지 평가하고 정부 보조를 통해 필요한 부분을 개조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 시력장애가 있는 분의 경우에는 어떻게 안전하게 간단한 음식을 해 먹고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커피를 타서 마실 수 있는지 그 방법과 필요한 용품들을 소개한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이 직업에 나는 거의 경도되었다. 누군가의 삶을 조금은 쉽게 만들어 주고 독립적으로 지속하게 해 주니 그 의미가 참 크다. 말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통역사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이해를 돕는다는 것만으로도 생활밀착형 내 직업에 소신이 선다.

점자 큐브


이쁜 딸의 머리도 묶어주고 옷정리도 해주고 싶지만 점점 나빠지는 시력으로 해줄 수 없는 엄마와 심리상담을 하는 자리에서는 상담사도 통역사도 그 엄마보다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울컥 올라오는 침을 삼켜야 했다.




연로하신 분들의 가정을 방문할 때면 종종 테이블에는 음료와 다과가 놓여있다. 내 집을 방문하는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우리의 다정한 문화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른이 주시는 물 한잔이나 과자정도는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게 우리의 예의건만 안된다고 한다. 신발은 아무렇지도 않게 신고 들어가면서 조그만 것이라고 받으면 안 된다는 담당자를 따라 나도 거절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안전을 중요시하고 직업윤리상 그래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물한병 정도는 괜찮잖아 하며 속으로 어떤 영화의 대사를 흉내 내본다. 돈을 쥐어주시는 분도 계셨다. 옆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굳이 사주시며 가져다 아이들 먹이라고 하신다. 받으면 안 된다고 잘 설명해 드리며 할머니 손에 다시 들려드린다. 할머니 눈에는 내가 딸 같기도 하고 집에 올망졸망 아이들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까?


한 가지 거절할 수 없었던 아니 꼭 받아 챙기고 싶었던 귀한 선물이 있었다.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깻잎이었다. 문 앞에 이미 새초롬이 놓여있던 한 봉지의 초록잎들은 노부부가 아침저녁으로 물 주며 키운 게 분명한 야들야들한 한국상추와 들깻잎이었다. 이거 갖다 먹어요 하며 주시는 그 한 봉지는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주저할 것도 없이 어머 감사합니다 이 귀한 걸 하며 냉큼 내 손에 들려있었다. 미니멀리즘이나 비우기 같은 요즘의 추세와는 상관없이 오래된 문학전집이며 교민신문 무더기, 아이들이 받아온 상패등 없는 것 없는 옛날 할머니 집이다. 식탁 위에는 어김없이 약바구니가 있고 벽에는 가족사진이 빼곡하다. 그리움에 형체가 있다면 냄새 조금 배어있는 할머니집쯤 될까? 들어서는 순간 막연한 그리움이 실체가 되어 부둥켜안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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