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의 세상, 부추기는 시험
시험에는 왜 시간제한이 있을까.
글을 느리게 읽는 편이었던 나는
언제나 쫓기듯 숨 가쁘게 시험을 치렀다.
눈대중으로 훑고 익숙한 정답을 고르고,
깊이 고민할 시간은 갖지 못한 채
오직 순발력과 직감으로 문제를 풀곤 했다.
시험 끝에 오는 것은 지적 깨달음이 아닌 날쌘 경주 후에 오는 안도, 혹은 허탈함 그뿐이었다.
천천히 읽어야 더 깊이 보이고,
행간의 깨달음은 언제나 두세 번 눈여겨봐야 보인다.
그런 것을 깨달은 건 대학까지 약 16여 년의 학창 시절을 지나, 시험이란 제도권을 아예 벗어난 사회인이 되어서였다.
무조건적인 암기는 좋지 않은 배움이라고 가르치면서 시험은 언제나 우릴 달달 외우게 만들었다.
시험을 잘 치르고 나서도 머릿속에 남는 건 없었다.
인생을 살다 보니 순발력이 필요한 때도 많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들은 깊고 오랜 고민들을 필요로 했다.
천천히 음미함에서 오는 즐거운 깨달음들,
깊은 고민 후 최선의 선택과 그것을 책임지는 책임감.
정말 중요한 것들은 빠르게 보단 느리게였다.
빨리빨리 가장 영리한 선택을 하라고 부추기는 시험이 아닌, 마음껏 고민해보고 최선의 선택을 하라고 부추기는 시험.
남들보다 더 오래, 늦게까지 앉아있더라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더 고민해보고 최선의 선택을 하라고 돕는 시험. 실수를 끝없이 돌아보도록 기회를 주는 시험.
그런 시험들을 치르며 살아왔다면,
내 삶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라는 가능성 안에서
언제나 좀 더 최선의 선택을 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