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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Apr 14. 2023

12. 그야말로 격음의 시대였다

 <미래과거시제> 를 읽고

그야말로 격음의 시대였다.

-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


SF소설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익숙함 보다 신선함에 가깝다. 익숙하다 못해 보편적인 현실과 동떨어진 신선한 미래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곤 했다. 배명훈 작가의 세 번째 단편집은 온통 신선했다.


수록된 단편 하나를 꼽자면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를 이야기하고 싶다. SF 앤솔러지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에 수록되었으며 비말 차단을 위해 파열음이 제거된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쩐지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다. 이는 문장마다 도망가버린 파열음 탓이었다.


오타인가? 처음에는 인쇄가 잘못된 줄 알았다. 맛을 느낄 수 있다면 밍밍하고 싱거운 맛이었다. 읽고 또 읽어도 혀 끝에 걸리는 문장. 언어는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한글을 창제했던 당시의 언어가 지금과 다른 이유도 그 때문이겠다. 그렇다면 파열음이 없는 시대도 상상 해봄직 하다.


어째서 파열음인가 하니, 조음기관을 갑자기 개방하여 내는 음성학적 명칭이었다. 나는 '차-' '카-' '타-' '파-' 하고 소리 내어 발음해 보았다. 파열적 음성답게 명쾌하고 분명한 소리였다. 소설은 주인공 시점에서 파열음이 제거된 문장으로 써 내려간다. 처음에는 한 번에 해독이 어려워 반복해서 읽다가 한 단어 한 단어 곱씹듯이 느리게 읽기 시작했다.


미래의 언어는 몹시 낯설고 불편했다. 다소 낯선 미래가 주인공에게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이며 파열음 따위 경박하기 짝이 없는 과거의 언어일 테다. 나는 주인공과 같지만 다른 이유로 그들의 언어를 받아들였다.


나의 현재는 격음의 시대이다. 비말을 뿜어내는 파열음이 없었다면 세상을 뒤덮은 바이러스로부터 좀 더 안전할 수 있었을까. 작가가 창조해 낸 미래는 분명 과거를 기점으로 변해왔으나 과거를 부정하는 신(新)세계일 뿐이다. 격음은 입에서 입으로 오가는 작은 물방울뿐만 아니라 생활 곳곳에도 존재했다. 남이 마시던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고 찌개 하나를 두고 여러 개의 숟가락이 오고 가는 불쾌한 풍습. 어디까지나 미래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미래에는 비말 차단을 위해 파열음을 제거했으나 과거이자 현재인 오늘은 얼굴의 반을 가리는 답답한 마스크만이 애쓰고 있는 현실이다. 상황이 많이 진화된 덕분에 마스크는 일부 해제 되었으나 더 이상 바이러스로 부터 안전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대면이 불편해졌고 술잔에서 술잔으로, 칼부림처럼 부딪히던 숟가락도 옮겨지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변화된 삶에 적응 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하길 원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계단에 오를 때마다 헐떡이는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되찾고자 했다.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 있는데.


마스크를 벗자 웃고 있는 입술이 보였고 찡그린 표정과 불시에 내뱉는 파열음이 생생했다. 이제서야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작가는 현재를 통해 미래를 그렸으나 소설에서는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미래를 통해 과거를 잇는다.


미래의 언어로는 과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해하는 순간은 있었다. 마스크를 벗고 참았던 숨을 내뱉는 순간 비로소 예전의 일상을 되찾은 것처럼, 파열음(과거의 언어)을 내뱉는 순간. 이해할 수 없었던 과거가 현재가 되었고 곧 미래가 된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6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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