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난 연애와 결혼을 이야기할 때면 곧잘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곤 했다.
나는 결혼은 일찍 하고 싶어. 28살에는 결혼하는 게 내 목표야!
당시엔 미처 몰랐다 결혼이라는 게 이렇게 냉정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복잡하며 어려운 것인 줄은. 도대체 누가 말했던가 결혼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숟가락 하나 놓고 시작하면 되는 거라고! 아직까지도 난 주위에서 숟가락 하나 들고 결혼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28살에는 결혼할 거라 외치고 다녔던 현실감 없던 20대를 지나며 내가 깨달은 것은 정작 결혼에서 필요한 건 숟가락 하나가 아니라 집 한 체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생각 없이 28살엔 결혼할 거라 떠들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럼 어서 지금부터 돈 벌어! 그것도 아주 많이!
지금까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몇 번의 연애와 몇 번의 이별을 반복했지만 결혼은 연애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였다. 나름대로 벽을 넘기 위한 시도도 해보고 타협도 해보려 했다. 언젠가는 이번엔 벽을 넘을 수도 있겠다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때마다 나는 여지없이 내 눈앞에 놓인 현실의 벽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나니 28의 결혼을 꿈꾸던 난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었다. 그리고 이젠 알아버렸다. 결혼이라는 것이 숟가락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랑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그런 건 어릴 때나 하는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말했던 어떤 꼰대가 어느새 나도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왜 항상 결혼은 나에게만 어려운 걸까?
30대 중반이 되고 나니 마치 '나는 세상에서 결혼이 제일 쉬었어요.'라고 말하듯 사람들은 내게 묻기 시작한다.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올해는 결혼해야지? 이제 결혼할 때 되지 않았어?
아, 예전에 뉴스에서만 듣던 명절 결혼 스트레스가 바로 이건 거구나.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런데 아직 명절도 아닌데 다들 왜 나만 보면 명절이 되는 걸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나 어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면 조금 낫다. 가장 서운할 때는 친구들까지 같은 이야기를 할 때다.
몇 년 전 결혼한 친구 중 하나도 나만 보면 '결혼해야지. 언제 결혼할 거야'를 마치 안부인사처럼 물을 때면 가끔은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인사라며 '올해는 결혼해야지'를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너도 올해는 아기 가져야지'
라고 맞받아 치듯 말하고 싶었지만 그 아픔을 알기에 차마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이왕 맘 상하는 거 나 하나면 되지 굳이 서로 마음상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언젠가 한 기자의 칼럼처럼 사람들이 나에게 결혼을 물을 때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되물으며 역정을 내고도 싶지만 남의 속사정 따윈 아랑곳 않는 사람들이 내가 역정 내는 이유를 모를 건 더욱 뻔하니 그것도 헛일이다 싶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에게 결혼을 묻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엄마다.
엄마는 오늘도 나에게 결혼을 묻지 않는다.
부모로서 남들처럼 자식에게 무엇하나 해줄 것이 마땅치 않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누구보다 속상해할 자식의 아픔을 알아서인지
혹은 과거 실패의 아픔을 굳이 들추기 싫어서인지는 몰라도
오늘도 엄마는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이젠 30대를 훌쩍 넘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치 엄마의 시계만큼은 20년도 더 된 어린 시절 그 날에 머물러 있듯
그때와 같은 표정으로 '밥은 먹었니?'라고 물을 뿐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유일하게 결혼을 묻지 않는 엄마를 볼 때면 더욱 슬프다.
이제는 '밥은 먹었니?'라고 묻는 엄마의 눈 속에 담겨 있는 자식을 향한 미안함과 슬픔이 보이기에
결혼을 묻지 않는 엄마를 볼 때면 괜스레 가슴이 찡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