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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May 25. 2023

부디 살아남거라

영국에서 워홀이 끝나고 한국에 들어가기 전 잠시 모스크바에 놀러 온 처제를 데리고 모스크바 근교의 세르게이 빠사드라는 곳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세르게이 빠사드로 가는 교통수단은 기차 밖에 없는데 2차 세계대전 때 타던 기차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낙후된 기차였다. 그나마 낙후만 됐으면 다행이지 과연 청소를 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좌석 여기저기엔 떼가 묻어 있었고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이동하는 한 시간 동안 도저히 쪽잠조차 잘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도착한 세르게이 빠사드는 고즈넉한 수도원이 마을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러시아의 시골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시아인 세 명이 지나다닐 때마다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뚫어져라 우리를 쳐다보곤 했다. 그래도 흔치 않은 작은 마을을 방문한 낯선 이들이 싫지는 않은지 우리는 모스크바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사람들의 친절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 끝나고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가기 위한 기차를 기다리던 우리는 모스크바행 기차에 올라탄 아들을 보고 가슴을 치며 오열하고 있는 한 엄마를 보았다. 모양새를 보니 징집에 소집된 아들을 보내는 것 같았다. 모두가 손쉽게 끝날 거라 예상했던 전쟁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치열한 항쟁에 오래 지속되었고 병력이 부족해진 러시아는 슬그머니 말을 바꾸어 전쟁에 필요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한 징집령을 내렸다.


징집령이 떨어진 후 수많은 청년들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 밖으로 탈출했지만 다른 나라로 도망갈 돈도 정보도 없는 시골 도시의 청년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터 한 복판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모스크바행 기차에 올라탄 앳된 청년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전쟁의 한가운데로 아들을 보내는 엄마는 가슴을 치며 무엇이라 외쳤을까?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살아남거라. 살아남거라. 부디 살아남거라”


가슴을 치며 우는 엄마의 외침 속에서 자녀를 향한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외침을 본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는 어린 자녀의 뒷모습을 보며, 인생의 중요한 관문인 수능장으로 자녀를 보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 첫 발을 떼는 자녀를 보며, 우리의 모든 순간마다 엄마는 언제나 우리 등 뒤에서 울면서 외쳤을 것이다.


“살아남거라, 살아남거라. 부디 험한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살아남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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