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마음 가는 데 길이 있었지

태국 입성, 방콕에서의 첫날

by 수수한

다섯 시간 반의 비행과 빠른 입국 수속을 마치고 입성한 방콕은 새벽 1시. 수완나품 공항 벤치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이고 동이 틀 무렵 카오산로드로 향했다.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는 카오산에 간다니. 별안간 이국에 도착한 사실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거리를 돌아볼 새도 없이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숙소에 오르느라 땀범벅이 된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1박에 8천 원 정도인 저렴한 방이라 에어컨은 없었고 천장에 커다란 선풍기가 하나 달려 있었다. 서울의 방에서도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났던 터. 대수롭지 않았다. 유랑민처럼 거처를 옮기고 살면서 이러저러 다종다양한 환경에서 잠을 자다 보면 숙소나 잠자는 곳에 바라는 게 많지 않아진다. 딱딱한 바닥에 등이 배기고 덥고 모기가 많아도 여느 호텔 숙박에 못지않게 잠을 잘 자는 몸이 되었다. 버라이어티한 숙박 경험에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고시원 같은 방이었지만 5층에서 보는 뷰 하나는 좋았던 방콕의 숙소

자고 일어나도 정오가 채 안 되었다. 배낭에 하루 종일 필요한 물건들을 때려 넣고 거리로 나갔다. 눈을 사로잡는 건 역시 노점상에서 파는 팟.타.이. 푹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단돈 50밧(약 1700원)을 지불하고 먹기엔 미안할 정도로 맛있었다. 후에는 이보다 저렴한 음식들을 발견하고 한 끼에 50밧 이상의 음식을 먹으면 괜히 사치를 부렸나 생각했을 만큼 풍부한 음식, 물자와 저렴한 물가에 적응했다.

우기를 맞은 9월의 태국은 여행의 비수기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여행자의 거리인 카오산로드답게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헐거운(?) 복장으로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참아내고 있었다. 역시 여행자가 많은 곳답게 투어 상품이나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말을 붙이는 광경도 재밌었다.

다소 당황스러웠던 점은 항상 같은 골목에서 호객을 하던 청년이 내가 화장을 말끔하게 한 때는(뜨거운 열기에 금세 더러운 자국을 남기며 녹아내렸지만) 한국어로 말을 걸고, 맨 얼굴에 코끼리 바지를 입고 나가면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는 것. 그렇지만 두 번 다 고개를 가로저어가며 틀렸다는 신호를 보냈다. 재미로.

방콕, 치앙마이, 빠이. 태국 내 동선만 생각하고 왔지, 방콕 안에서 어디를 갈지는 고민하지 않고 떠나온 터라 갈 곳이 막막했다. 구글맵으로 주변을 검색하니 태국의 왕궁과 사원들이 가까이에 있었다.

걸었다. 평소처럼 아주 많이 오랫동안 헤매고 수없이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얼마 전 서거한 국왕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담아서 검은 옷을 차려 입고 왕궁을 방문하는 태국인들과 왕궁의 사진을 찍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나는 금방 지루해졌다.


근처 사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태국은 불교를 주로 믿는 나라라서 신도로서 찾아오는 이도 많았고 나처럼 오다가다 들른 여행자도 있었지만 사원에 들어갈 때는 모두 반팔티와 긴 바지 정도의 예의를 갖추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 부처 앞에 서야 했다.

그리고 내가 태국에서 처음 찾아간 방콕 대표 사원인 '왓포(Wat Pho)'에는 거대한 와불이 있었다. 한국의 거리에서 왓포태국마사지라는 간판을 볼 때마다 이곳이 다시 생각나곤 한다. 실제로 왓포에는 마사지학교 겸 센터가 있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아프고 시원했다.

난생 처음 본 와불. 괜히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한눈에 보기 힘들 정도로 크고 편안한 표정으로 모로 누운 부처를 마주하자니 생각 없이 간 나조차 합장을 하고 마음의 평화를 빌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일조차 부질없이 느껴졌다(는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열심히 길을 잃고 열심히 목적과 대책 없이 걸어 다니는 게 가장 이번 여행다운 방법이라 생각하고 왓포에서 나올 때부터는 지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발길을 돌렸다. 살짝 돌아간 골목에서 수상버스 선착장을 발견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아주 짧은 거리를 다니는 배였지만 해질녘을 배 위에서 맞을 수 있었다.


배에서 내려 다른 여행자의 꽁무니를 쫓아 들어간 길을 통해 또 다른 아름다운 사원 '왓 아룬(Wat Arun)'을 만났고 그곳의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새벽 사원이라는 별칭이 있는 왓 아룬

책을 읽다 잠깐 메모를 하는데, 문득 얼마 전에 본 영화 <미스터 노바디>가 생각났다. 영화는 철학자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 “B(Birth)와 D(Death) 사이에는 C(Choice)가 있다.”처럼 개인의 선택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서 나비효과처럼 발생하는 우연으로 구성되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택과 영향의 파장이 구성하는 인생은 인간의 것이면서 인간의 것이 아니기도 한, 참으로 아득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택지 A와 B 중 무엇을 선택하든 최종적으로는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는 예측 불가능함, 통제 불가능함이 흥미로운 부분이고 그 점이 인간을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게 해 역설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지는 않을까.

우연히 수상버스를 함께 탄 초등학생들 지켜보기

나의 경우, 인생에 주어지는 선택에 관해 내 모든 선택을 인정하고, 그 결과가 뜻밖의 어려움을 낳을지라도 결코 후회는 않으려 한다. 선택의 주체는 나이고 결과의 책임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하는 몫이기에 더 많은 가책을 주지 않으려는 걸지도 모른다.

방콕 짜오프라야강의 낙조

이 여행 또한 내 선택이었다. 지옥 같았지만 허우대는 멀쩡해 보이던 한 세계를 박차고 나와 다시 비루하고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순간 평화가 찾아왔지만 일상은 세상에 떠도는 여러 말들을 속삭이며 점점 마음을 죄어왔다.

그 일상을 참지 못하고 이국이라는 다른 세계로 옮겨온 나의 선택이 분명 전환점이 되어줄 거란 확신이 있었다. 통장 잔고는 더 내려갈 데 없이 바닥을 찍고 어떤 고생을 겪더라도 이 마음, 이 일상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확신. 그 확신이 갈 길 없이 천장을 배회하던 눈동자를 일으켜 세웠다.


딱히 보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고, 혼자 떠나온 여행이라 감상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이토록 멋 없고 욕망 없는 여행이라니. 갈 길은 멀고 심심할 것이 뻔했지만 이왕 떠나온 이상, 멈출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걷고 보고 걷고 멈추고 다시 걷는 게 일상이 되었다. 첫날은 3만 보, 다음 날은 2만보. 방콕에서의 이틀은 땀 흘리는 이동의 연속이었다.

앞으로 사정없이 고생하게 될 발을 미리 찍어둔 건 우연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