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방법
"어떤 여행을 좋아하세요?
맛집과 카페 투어? 유적 탐사? 액티비티?"
치앙마이에서 추천할 만한 장소를 묻는 내게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되물었다.
"글쎄요... 액티비티였나?"
숙고 없이 답을 하고 말았지만,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가는 동안 이미 '그건 아냐.'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바로 고민에 빠졌다. '나는 어떤 여행을 좋아하지?'
사장님이 추천해주는 장소와 액티비티 투어 프로그램들은 이미 웅얼웅얼하는 먼 곳의 소리가 되었다. 그날 그 순간부터 나는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여행과 내가 좋아하는 치앙마이를 찾기 시작했다. '힐링', '여유', '한 달 살기 좋은' 등의 대중적인 수식어 말고, 내가 보고 느낀 치앙마이로 내가 좋아하는 풍경과 내 여행의 방법을 찾고 싶었다.
달밤이 그윽한 사원(도이수텝 사원)에서 황금빛 부처 앞에 가만히 서서 내가 무얼 바라는지 모르겠다고 선문했다. 물론 답은 없었다.
얻은 것 없이 사원 바깥에 나가 손에 닿을 듯 눈 가까이 펼쳐진 치앙마이의 어두침침한 야경을 보았다. 휘황찬란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홍콩의 야경, 서울의 야경과는 다른 고요한 밤의 풍경이었다.
현지 대학생들이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과제를 하고 책을 읽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흔한 풍경의 카페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었다.
수업 시간에 접하면서 수업을 위해, 시험을 위해 3번쯤 아니면 그 이상 읽으며 밑줄을 그었고 전율했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긋한 깊은 향을 머금고 있어 싫증나지 않고 아직도 나를 감동시키고, 놀래키고, 투영하고,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좋은 책을 읽으며 한낮을 보냈다.
버스나 택시를 타도 될 거리를 구태여 걷다가 땀 바가지를 쏟아내고서야 커피를 한 잔 찾았다. 그렇게 달콤할 수가. 소금을 뿌린 카라멜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달콤한 순간을 더 온전하게 느끼고 완벽하게 좋아하기 위해 굳이 고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눈을 번뜩이며 돌아다닌지 오래지 않아 내가 찾던 시간이라고 직감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나갔다. 자전거로 가기는 길이 복잡할 거라고 만류하셨던 시장까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부러 조용한 길로 돌아가는 수고를 마다 않고 골목 골목에 바퀴 자국을 남기다보니 멈추고 싶은 길어귀가 있었다.
잠깐 멈췄다. 앞에 있는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를 한 잔 시켜놓고 인적 없는 길을 우두커니, 하늘을 멍하니, 공기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래 걷다 보니 자전거를 타는 게 좋았고 더운 날이라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게 좋았고 그러다말고 잠깐 멈춰 있기가 좋았다.
왼쪽 발은 땅에 디디고 오른쪽 발은 허공에 떼어 매 걸음을 만드는 속도, 두 발로 동시에 페달을 밟아서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는 모두 다르다. 움직이는 방법에 따라 거리를 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걸을 때, 멈출 때는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처럼 자세히 관찰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타면서는 크로키를 그리는 손처럼 핵심만 기억하고 스칠 수도 있다. 오토바이, 자동차와 같이 더 빠른 수단은 풍경을 영화처럼 번지듯 기억하게 하고.
여행에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목적보다는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과 방법의 변주였다. 3년 전 마추픽추를 가기로 했을 때 정석대로 기차를 타는 게 편하다는 걸 알았지만 기차표 값도 아끼고 새로운 경험도 할 겸 7시간 동안 미니밴을 타고 3시간을 내리 철로를 따라 걸었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이유는 무엇보다 새로웠고 못 해봤던 방법을 시도해본다는 사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서 8시간을 절약하는 것보다 자칫하면 황천길이 될 수 있는 산 중턱 아찔한 길을 타며 세상에 나 처음 보는 절경을 눈에 담는 것과 철길을 걸으며 새삼 이 정도의 체력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유적, 맛집, 시장, 액티비티 어디와 무엇이 되었든 그곳으로 가는 방법과 보는 풍경을 새로 발굴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변주해야만 더할 나위없이 즐거웠던 여행으로 기억한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라는 내 여행의 명제를 설정하고 그 마음을 따라가니, 자꾸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을 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변주하는 여행이고 여행 안에서도 매일 매시간 새로울 줄 아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