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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Nov 12. 2018

00 : 프롤로그

잔잔한 듯 뜨겁게, 타이베이

모두에게 잊지 못할 여름이었던 지난여름, 미친 듯이 더워지기 바로 직전이었던 7월 초의 며칠을 타이베이에서 보냈다. 서울이 채 38도에 육박하기 전이었는데, 나는 그 더위를 미리 체험하고 왔다. 첫걸음부터 더웠다.


타이베이에 닿은 첫날에는 중국과 일본의 혼재라고 생각했다. 날씨는 홍콩처럼 무더웠고. 그런데 내가 잘 몰라서 내가 아는 세계를 기준으로 삼는 그런 흔한 비유가 와 닿은 거지, 실제로 대만은 대만이었다 그냥.

 

첫 버블티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같은 만다린 어를 쓰지만 중국보다 말소리가 크지 않아서 듣기 좋았고 사람들이 일본보다 수줍음을 덜 타고 가식이 없어서 대하기가 편했다. 


친절한데 당당하다고 느꼈다. 이방인들에게 부러 고개 숙이거나 친절을 가장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절대 과하지 않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한 선을 아는 느낌?


또 무엇보다 타이베이에 애정을 가득 품고 돌아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온화함이었다. 쉽게 웃지도 쉽게 찌푸리지도 않아서 사람들의 심성이 단단하고 온화하다고 생각했다. 


도시가 참 건강해 보였다. 같은 아시아이고 대도시인데 어쩜 그럴 수 있는 걸까! 매번 놀라웠다.


고작 4박 5일을 지내고 뭘 알 수 있을까만은, 첫인상에서 파악되는 면모가 실제 본성에 가까울 때도 있다. 대만은, 타이베이는 그런 곳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언니와 함께한 여행이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간호사인 언니에게 쓰리 오프라는 황금 같은 휴일이 생겼고 언니는 여름휴가를 겸해 어딘가 떠나고 싶어 했다. 

때마침 나도 퇴사 후 단기알바를 전전하며 점점 후끈해지는 서울의 열기를 견뎌야 하는 생활이 무료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날 함께 떠나기로 했다.


그 어디가 되어도 좋았다. 다만 언니의 시간을 고려해 행선지는 가까워야 했고 이왕이면 둘 다 안 가본 곳에 물가가 너무 비싸지 않았으면 했다. 그 모든 조건의 합집합이 대만이었다. 

둘 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하는 심정이었기에 계획도 별로 없었다. 가고 싶은 곳 몇 군데만 점찍어놓고 갔다.

우리의 차이를 많이 느끼게 했던 스펀폭포.

참 순조롭다 싶었는데 막상 순조롭게 가고 보니 2살 차이인 우리는 자라면서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여행 스타일도 너무 달라졌다. 어찌나 다른지….


매 순간, 새삼스럽게 느꼈다. 혼자 한숨을 쉰 적도 있고 웃겨서 웃음을 터트린 적도 있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서로를 챙기는 건 역시 서로뿐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라운지바에서 축구 경기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맥주병을 동내면서 통 못 듣고 살았던 속내를 얘기하고 으쌰 으쌰 서로 힘을 북돋아줬다. 하루 일찍 떠나는 언니를 배웅할 땐 뭉클하기까지 했다.



몇 번의 여행기를 기록해오면서 이번은 좀 특별하게 써볼까 싶었다. '퇴사 후의 여행', '언니와의 여행' 등 멋진 콘셉트를 잡아볼까 했지만 역시 어렵다. 솔직하게 꾸준하게 쓰는 게 최선인 것 같다. 그러니 우연히 이 매거진을 읽는 분들도 힘을 빼고 설렁설렁 읽어주시면 좋겠다. 너무 뻔한가?


아무튼, 2018년 7월 5일부터 9일까지의 4박 5일, 잔잔한 듯 뜨거웠던 타이베이 여행을 '천천히'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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